이효성 (전 정의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사람들이 내게 묻는 말 중에서 내가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 “고향이 어디니?” 고향을 물어보면 어떻게 답해야 할지 늘 난감하다. “태어난 건 서울인데요, 어렸을 때 충청남도 공주에서 살다가 대전으로 이사 갔고요, 고등학교 때 서울 용산구로 이사 갔다가 계속 여기저기 돌아다녔어요.” 내가 태어난 건 서울이지만 너무 어린 시절이어서 기억이 없다. 너덧 살쯤 공주로 이사를 가서 초등학교 고학년 때까지 있었으니 공주는 고향으로서 가장 유력한 후보지다. 그런데 공주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지 않고 대전으로 전학하였으니 고향이라고 하기엔 뭔가 애매하다. 그렇다면 중·고등학교 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대전이 내 고향일까? 그렇게 말하기에는 고등학교 졸업 전에 서울로 이사를 하였으니 중·고등학교 몇 년의 기억으로 고향을 삼기가 역시 조금 애매하고 머쓱하다. 대전도 내 고향은 아닌 것 같다. 

누구는 고향을 조상 대대로 살아오거나 태어난 곳이라고 한다. 누구는 유년 시절의 기억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또 누구는 고등학교나 대학교 졸업장에 적혀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나는 태어난 곳에 대한 기억이 없고, 초등학교 졸업장에는 딱 반 학기 다닌 초등학교의 낯선 친구들 얼굴뿐이며, 고등학교 졸업장 역시 마찬가지다. 추억이 지속될 때쯤 이사하고 또 이사했으니 동창회는 만무하고 연락하는 친구도 거의 없다. 고향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그래서 늘 명쾌하지 않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곤란함을 겪고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 사회 경제성장 과정에 비추어볼 때, 시골에서 태어나 직장을 구하기 위해 도시로 이주해 자리를 잡은 50대 이후 세대에게 고향은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장소로 나름 명확하게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자녀 세대들, 도시화된 공간에서 태어나 부모 따라 이사를 거듭했던 40대 이전 세대들에게 고향이라는 감각은 부모 세대와 같지 않을 것 같다.

다른 지역에 살 때도 그랬지만 춘천에 와서도 고향에 관한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나는 이번에도 역시나 대답을 확실하게 하지 못했다. 고향을 묻는 이들 중에 어떤 이는 정당 활동을 하는 나에게, 춘천의 OO고를 나와야 정치를 할 수 있다는 말을 얹어주기도 했다. 나는 선출직 정치인이 되고 싶다고 해도 춘천 출생이 아닌, 춘천지역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장 없는 내가 춘천시의회나 강원도의회에 들어가는 건 그분 말대로 꽤 어려운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향으로서의 춘천을 생각해본다. 춘천은 강원도의 주요 3개 도시 중 하나로서, 예전에는 인근 지역에서 많은 이들이 살기 위해 이주해 왔지만, 지금은 많이들 떠나가고 있어 걱정이라고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자란 곳, 또 누군가에게는 꿈을 안고 막 이사 온 곳일 것이다. 바라기는 춘천이 개발되더라도 고향 정서를 모조리 없애는 방식으로는 개발되지 않았으면 한다. 시민들의 추억이 지켜지고 미래가 그려지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누군가 그랬다. 고향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고향 삼기 나름이라고. 그렇다면 나는 이제 더이상 떠돌이가 아니다. 서울, 공주, 대전이 고향이었던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내 고향은 춘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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