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구 (문학박사, 춘천학연구소장)
허준구 (문학박사, 춘천학연구소장)

청평산 유람의 제멋은 무엇보다 청평사 관람에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청평산에 가서 청평사만 관람하고 청평산을 보았다고 이야기한다면, 이 말에는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왜냐하면, 청평산 관람을 청평사에만 한정해서는 청평산의 백미인 서천 계곡과 선동 계곡을 놓치게 되기 때문이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어느 지역을 유람하기 전에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철저하게 조사하고 학습을 하였다. 요즘처럼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회의 측면에서도 유람은 아주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까닭에 옛사람들은 유람 뒤에는 방문지의 느낌과 가치를 담아 유람기를 작성하였다.

이곳으로부터 서남쪽으로 70보 떨어진 곳이 서천(西川)이다. 서천의 아래쪽에 절구처럼 생긴 연못이 있다. 연못 위쪽에 대(臺)가 있고, 대의 위쪽에 큰 소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이를 독송(獨松)이라 부른다. 매월당 김시습이 예전에 이 대 위에 정자를 지어 놓고 거처하였다고 한다. 대개 산골짜기의 물이 합류하여 이곳으로 흘러온다. 바위를 깎고 돌에 부딪칠 때마다 꺾이면서 물보라를 일으키는데, 빠르게 흐르다 연못에 이르러서 물거품은 둥근 모양을 만들며 잔잔하게 흘러간다. 단풍나무 숲과 버드나무, 괴석과 고목이 양쪽 언덕을 덮으며 가리고 있어 깊고 그윽한 흥취가 있다. 대(臺)의 서쪽에는 이층의 단(壇)이 있는데, 고을의 수령이 기우제를 지내는 곳이다. 정성스럽게 기원하면 종종 감응이 있다고 한다. < 서종화 「청평산기」 중에서 >

청평산 서천은 청평 선동이 시작되는 곳까지 이어지는 골짜기로 작은 물웅덩이와 폭포가 이어져서 아기자기한 맛과 바위와 돌 틈을 비집고 흐르는 계곡물이 주는 역동감을 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서천 계곡에는 조선 초기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머물며 시도 짓고 몸을 닦던 공간이 있다. 매월당 김시습은 권력으로 인한 인생의 무상과 세상의 부조리를 직접 경험하고서는 궁벽하고 외진 이곳에 머물며 지친 심신을 달래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자신을 충전하였다.

老夫入山貪佛日    노부가 산에 들어와 스님 생활 즐기는데

更愛西川水淸絶     물 맑고 빼어난 서천이 더욱 사랑스럽네.

西川奔流勢蜿蜒     서천이 구불구불한 기세로 치달려 흐르며

一匹練光明遠天     한 필의 비단 빛으로 먼 하늘을 밝히네.

殷爲晴雷撼佛宇     천둥 치듯 계곡 물소리는 불당을 흔들고

散作飛雪灑珠圃     흩어져 날리는 물보라 구슬처럼 뿌려지네.

漱弄瓊液踏蒼苔     옥 물로 양치하고 장난치며 이끼 밟으니

沈痾消散毛孔開     숙병이 사라져 없어지고 모공이 열리네.

擧酒相屬二三子 술잔 들어 두세 사람과 서로 권하면서

朗吟泉聲岳色裏    샘 소리와 산빛 속에서 낭랑히 읊조리네.

風塵羞作噲等伍    풍진 속에서 부족한 사람 되어 부끄러우니

欲乞文殊社中住    문수사 속에서 거주하기를 구걸하려 하네.

< 김익희(金益熙, 1610~1656) 「西川次淸陰相公韻:서천에서 청음 김상헌의 시에 차운하다」 >

서천 계곡에는 여울과 연못이 반복하며 이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너럭바위와 함께 절구처럼 생긴 연못이 있다. 서종화는 유람기에서 이름을 말하지 않았지만, 그곳에 공주탕이란 안내판이 세워져 있어 이곳이 공주탕임을 알게 된다. 청평사 초입새에 세워진 상사뱀과 공주 이야기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공주탕 근처에 매월당이 거처하였다는 정자는 지금은 찾을 길이 없지만, 정자를 지을 만한 편편한 곳이 있어서 매월당이 머물렀을 정자가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