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태 (시인) 

조상 대대로 묻혀온 선영에

퇴락한 분묘를 봉분하고 오다

문득

오늘 같이 누운 내 모습을 보았네.

피와 살도 체면과 못 바꾸던

할아버지는

한 뙈기 밭도 없이 돌아가셨네.

쨍쨍한 어느 날

할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을 오르다

양반도 죽고 상놈도 죽은

묘를 보았네.

백옥의 뼈로 누운

명령도 복종도 없는 풀밭

아이들은 수천의 침묵을 깨고

친구되었네.

보았네.

개헤엄 안 친 양반과

정강이가 휘어진 오늘의 양반을

나는 보았네.

이무상 시집 <사초 하던 날>, 시문학사, 1983 중에서

지금이야 화장과 납골 문화가 번성하여 모르는 이가 많지만, 사초는 무덤을 보수하는 것이다. 세월이 흘러 묘의 봉분이 주저앉거나 짐승이나 풍수해로 훼손되면 한식이나 손 없는 날을 택해 먼저 제례를 지내고 흙갈이하고 떼를 새로 입히는 일가붙이들의 행사다. 

화자는 선영의 무너진 봉분을 다시 세우며 거기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같이 누운 자신을 본다. 피와 뼈, 살로 이어진 조상이기에 그럴 수 있겠고 죽은 이들이 모두 흙이고 그 흙에 푸른 침묵으로 자라며 눕고 일어서는 아이들의 풀밭이기에 그럴 수 있겠다. 정황을 보여주는 1연과 달리 2연에서는 조상 묘처럼 목소리 돋우는 가문의 높으신 양반 이야기가 사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깨달음이 있고, 3연의 죽어서는 명령도 복종도 위아래도 없는 풀밭이라는 전언은 울림이 크다. 줄지어 내려오며 봉긋한 무덤에 양반이면 뭐하고 상놈이면 뭐하겠는가? 평등하게 풀로 돌아가 고스란히 친구가 되는데, 살아있는 자들만 높낮이를 따지는 걸 그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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