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춘천여성협동조합 이사장)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떠올릴까? 주변에서 흔히들 “나는 성 평등을 지지하지만, 페미니즘은 아니다”라고 말을 할 때가 있다. 혹은 내가 페미니스트로 불리어진다면 모든 것을 대답해야 할 거 같아 두렵다고도 한다. 개인이 입장을 밝힌다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는 하나의 틀로 단단히 가두어져 규정되는 경향이 크다. 그래서 두렵고, 주저하는 것이다.

나는 20대부터 ‘나의 입장’을 곱씹으며 지금까지 살아오고 있다. 나는 누구이고, 어떤 이들과 세상을 바꾸어나가고 싶은가,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에 대한 긍정과 회의, 갈등과 토론을 반복하며 나는 구성되었다.

문턱이 낮은 작은도서관 운동을 통해 행동하는 시민들을 만나고 싶어 했고, 여성회를 통해 기혼여성들이 가장 안전하게 지지받는 여성주의 공동체를 꿈꾸었다. 나는 학생운동, 지역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여성들을 만나면서 페미니즘으로 각성되었다. 지역+여성회가 어느 순간 교착되는 한계를 목격하고, 또 다른 자극을 위해 페미니즘을 공부하러 대학원에 들어가기도 했다. 엄청난 포부로 똑똑박사가 되리라 다짐하며 서울로 올라갔지만 1년이 지났을 때 내가 배운 것은 딱 하나였다. 나는 아는 게 없다. 깊은 절망을 순간 느꼈다. 엄청나게 아는 것이 많다고 자만했지만, 순간 껍데기뿐인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정답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찾는 대신 과정을 통해 꽉꽉 들어찬 내 상자를 조금씩 비워냈다. 

서울에서 만난 페미니스트들은 모두 너무 달랐다. 역사의식도 달랐고, 정세판단도 달랐다. 어떤 면에서는 엄청난 투사였지만, 어떤 면에서는 자본주의에 너무나 관대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의심하며 공부를 하러 온 이들도 있었고, 아니라고 하지만 누가 봐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성별 고정관념이 내재화된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이들은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불렀다. 이들의 공통점은 단 하나, 다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무례하지 않는 것이다. 입장은 드러내되 상대를 경청하고, 나의 입장과 너의 입장의 다름을 인정한다. 그리고 나의 입장으로 상대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한 공격은 폭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마냥 온건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너무 옳아서 상대에게 언어적 정신적 신체적 가해를 하는 이들에 대해 엄청나게 분노한다. 나는 페미니즘을 만나고 나서 ‘촉각’을 곤두세우게 되었다. 이 촉각은 무심결에 내뱉는 비아냥과 무례함에 대부분 꽂혀있다. 대부분 타자에게서 이런 것을 목격하기도 하지만, 가끔은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나는 지금 ‘권위’를 부리고 있지 않은가. 페미니즘은 그런 것이다. 모든 억압을 종식시키는 것. 평등의 본질을 되찾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모닝커피 한 잔에 촉각을 예열시킨다. 오늘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내 촉각을 곤두세울 참이다.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