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후반에 다시 잡은 붓… 골무화가 박선옥 씨

우리는 언제부터 꿈을 꾸었고, 얼마나 긴 시간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해 왔을까? 초등학생일 때부터 꾸어온 꿈을 50세가 넘는 나이에도 유지하고 이루려는 노력을 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늦은 나이에 화가의 길로 재도약 하고 있는 박선옥 씨(53)를 만났다. 

그의 미술학원에서 인터뷰 일정을 잡고 아이들이 도작하기 전 짬을 내어 대면이 이뤄졌다. 코로나 전염을 대비해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구석구석 소독을 마친 후라 학원에는 냉기가 돌았다. 찬 몸은 따뜻한 그림을 보면서 녹아내렸다. 학원은 그의 작품과 아이들의 작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렇게 그를 만나게 된 연유는 40대 후반이라는 조금 늦은 나이에 화가로 복귀하고 대한민국수채화대전에서 근 4년간 모든 출품작이 입선 이상의 수상을 거머쥐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박선옥 화가

강원도권역이 아닌 전국대전에서 수상을 이어가다.

“솔직히 타 지역도 마찬가지겠지만 강원도와 춘천 미술계에 보이지 않는 카르텔을 경험했어요. 입선이 됐었는데 그 순위가 이유 없이 점차 밀리는 것을 경험하고 스스로 궁금증이 생겨 전국대회에 출품해 보았죠. 저는 관동대학교 87학번 서양학과를 나왔는데 전국대회 출품 시에는 모든 학력과 경력을 숨기고 이름만 내걸었죠. 첫해에 입선을 했고 다음 해에는 우수상, 가작, 그리고 입선을 연속 4년간 이어 하게 됐어요. 저에게 용기와 자부심을 주는 계기가 됐어요.”

현재와 과거를 잇는 그림, 그리고 골무

“저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주제를 그림으로 그려요. 추억을 상기시키는 작품을 좋아합니다. 현재와 과거의 콜라보라고 할까요? 성장기에 할머니와 함께 살았기에 추억이 많아요. 손재주가 많으셨던 할머니는 바느질을 참 잘하셨어요. 반짇고리를 보면 할머니가 제일 먼저 생각나요. 지난 7월 처음으로 열게 된 개인전의 주제도 ‘할머니와 나’였어요. 

서양화를 그리는 화가지만 동양적 요소를 가미하고 그 동양적인 것을 주제로 그리는 서양화가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오방색을 응용하고 싶었는데 그 작은 골무 안에 우리의 전통 오방색이 모두 담겨있고 삶의 의미를 담은 전통적 그림들이 오밀조밀 담겨있어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림은 삶을 풍성하게 해 준다는 철학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박선옥 화가

미술 전공자, 그러나 40대 후반에 다시 붓을 잡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게 되면서 사회생활을 못 했어요. 첫째 아이가 태어나자 육아에 전념했고 큰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갈 무렵 둘째를 낳았어요.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간 후 유치원 등에서 일을 하다가 그림을 다시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2013년 ‘봄내그림향기’라는 동호회에 들면서 다시금 붓을 잡았어요. 2012년엔 담작은도서관 입구에 그렸던 호랑이 그림을 그렸고 시청 소식지 ‘봄내’에 실리기도 했죠. 최근엔 퇴계천 터널 내 벽화 프로젝트에 참여해 학원생들과 한 구역에 작품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림 그릴 때 제일 행복했었던 어린 시절 

“저는 글도 그림으로 배웠어요. 글씨를 쓴다기보다 그대로 따라 그린다고 느낌이었고 그것이 어렵지 않고 재미있었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경필대회에 나가 수상을 했고 칠판에 글씨 쓰는 걸 도맡아 때론 그것이 귀찮고 힘들 때도 있었습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엔 무조건 미술시간이 제일 좋았고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그림으로 인정받을 때가 가장 행복했었죠. 가족들이 예체능에 소질이 있었던 거 같아요. 아버지는 마라톤 선수에서 체육교사가 되셨고, 엄마도 고등학교 때 배구선수를 했었다고 해요. 할머니와 할아버지 두 분 모두 손재주가 좋았던 걸 보면 예체능에 소질 있는 가족이었던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조부모님, 고모들, 부모님과 동생들, 9명의 대가족이라 저에게 미술공부 뒷바라지를 해주실 만큼의 형편은 되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3학년 2학기 때 강원대 1학년 학생이 아르바이트 삼아 교습하는 곳에서 6개월 수업을 받은 것이 입시교육의 전부였어요. 그리곤 강원대 미술학과에 응시했는데 너무 자신감이 없더라고요. 실기에서 떨어지는 것을 예감했다 할까. 그리곤 관동대 미술학과에 들어가 서양화를 전공했습니다.”

열정과 재능 발견에 도움을 주는 사랑하는 이들

“2017년 정말 고마운 멘토를 만났어요. 그분도 그림을 그리시는데 제가 열정을 되찾고 그림에 대한 주제를 잡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분 이이에요. 저의 옛 감성이 그림에 녹아나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 주셨죠. 이 선생님의 추천으로 뉴욕 갤러리와 연결이 되어 내년 3월 전시에도 참여하게 됐어요. 정말 좋아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분이에요. 

최근엔 가족들도 응원을 많이 해줍니다. 화가로 활동하고 개인전을 열고 하는 동안에 남편이 정말 기뻐했어요. 자녀들도 항상 응원해 주고 좋은 소식이 들릴 때마다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었어요. 그림을 함께 그리며 동력을 키우는 동료들도 큰 힘이 됩니다.”

지난 7월 개인전에 전시된 작품들

아이들 미술교육, 그리고 화가로 걸어갈 길

“미술 교육자로서 아이들에게 진정한 아티스트의 길을 보여주고 싶어요. 그리고 성장해서 어떤 일을 하게 되더라도 그림을 그릴 줄 안다는 것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요. 그림 그리기의 실질적 효과로는 창의력과 집중력을 향상시켜 학습능력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코로나 시국으로 지친 마음을 정서적으로 치유하는 데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 활동으론 춘천 미술협회 분들과 함께 만든 ‘미술밭사람들’단체 로 올해 ‘갤러리 툰’에서 ‘마스크 속에 감춰진 사람들’이라는 전시를 했었어요. 기존의 틀을 깨고 사회와 소통하고 코로나 등으로 지친 이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전시를 앞으로도 이어갈 예정입니다.

그리고 내년 3월 참여하게 된 뉴욕페어전(첼시)이 무사히 진행되고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라요.”

정교한 묘사에서 강렬함이 느껴지고 오밀조밀 작은 골무들을 보니 어린 시절 어머니 반짇고리가 생각나 마음이 따듯해진다. 아이를 양육하는 동안 놓았던 붓을 다시 잡아 꿈을 이뤄가는 모습이 매우 열정적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림으로 부각되어진 삶을 살았다. 타고난 재능은 때론 그를 어렵게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속에 있을 때 제일 행복했다. 다시 세워진 붓끝에서 시작되는 그의 재도약을 응원하고 현재와 과거를 잇는 또 다른 작품들에 기대를 건다.  

유은숙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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