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들바람은 누구나 알고 있듯이 시원하고 부드럽게 부는 바람을 일컫는다. 기분 좋은 바람이다. 코로나와 함께 한 지 2년을 넘어 곧 3년 차에 접어들면서 산들바람 같은 기분 좋은 일상이 그립기만 한 요즘이다. 걱정 없이 일상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그 날이 언제쯤 오게 될지 몰라 조바심만 내고 있을 무렵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춘사톡톡*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는 요즘이다.

“행복하기 위해 빈둥거리는 게 아니라 폼나게 빈둥거리니까 행복한 것”이라는 저자는 춘천 툇골에 자리 잡은 지 근 18년이 다 되어가는 환경운동가이자 작가이다. 1990년대 상계동 쓰레기 소각장 반대 운동으로 환경운동에 뛰어들었던 저자는 ‘풀꽃 세상을 위한 모임’이라는 환경단체를 만들어 환경운동을 벌였으며, 지금은 ‘풀꽃평화연구소’를 꾸려 산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이런 저명한 분을 이제서야 비로소 알아보게 된 ‘나’이다. 부끄러움을 슬쩍 내려놓고 산들바람 이야기를 꺼내 들겠다. 

 “책임이 있는 자만이 무책임하게 행동할 수 있다”(한스 요나스)는 말이 있다. 흔히 책임 소재를 물을 때 인용되지만, 이 말의 고갱이는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말의 허구를 적시한 말이다. ‘우리’라는 복수 명사를 고통 없이 쓰는 순간, 책임질 자는 면책되고 만다. 지구 생태계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이, ‘우리 책임’이라고 하면 누구의 책임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고 만다. -중략- 나는 실패한 환경운동가, 거듭되는 시위와 생태 에세이 따위로 절대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체험한, 빼도 박도 못한 비관론자다. 비관론자는 시골에 가만히 있어야 세상에 해를 덜 끼친다.” (210~211쪽)

 세상을 향한 작가의 외침이다. 그의 소리침이 메아리가 되어 허공에서 사라지더라도 저의(低意)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산들바람 산들 분다>는 봄-마른 낙엽을 밀어내는 원추리 새순, 여름-개울에 빠진 거위, 가을-밤송이 속에 파고드는 달빛, 겨울-적설에 부러지는 귀룽나무 가지. 이렇게 4부로 이루어져 사계절에 따른 그의 산촌살이를 담고 있다. 산골의 원래 주인이었던 뱀이 많아서 거위를 키우기 시작한 저자는 거위와 근 15년을 동고동락하면서 서툰 산촌 생활에 적응해 나갔으며 이웃의 신뢰를 얻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생명의 원천인 산천을 지키고 소비를 덜 하며 자연을 지키는 그의 산촌살이는 저자의 말대로 “인간의 품위를 되찾고, 시간 부자로서의 삶의 존엄을 확보”했던 것이다.

춘사톡톡 회원들은 작가와의 만남 이후 내친김에 ‘풀꽃평화연구소’를 방문해 보기로 했다. 1차 선발대는 빅3 춘사톡톡 선생님들을 모시고 차로 이동하였으며 나머지 후발 주자들은 걸어서 이동하기로 했다. 출발점은 서로 상이했지만, 인형극장에 재집결하여 신매대교를 건너 툇골길을 함께 걸으니 소풍 나온 아이마냥 기분이 좋았다. 지름길 인양 밭길을 잘못 들어도 좋았고, 미처 떨어지지 않은 마른 대추를 맛보아서 좋기도 하였으며, 마당에 둘러앉아 담소를 나누며 김장을 하고 있는 흐뭇한 광경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두어 시간을 지나 연구소에 도착했을 때는 미리 도착해 계신 빅3** 톡톡 선생님들과 톡톡의 보석같은 살림꾼인 총무, 그리고 풀꽃 지킴이 세 분이 반가이 맞아주셨다. 난생처음 보는 서가의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지런히 폼나게 정돈되어있는 코엑스 센트럴플라자의 별마당도서관보다 더 경이로웠다. 손때 묻은 책 한권 한권에 담긴 작가의 마음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따듯한 작두콩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 후 우리 모두는 허기진 배를 채우러 그 유명한 툇골 오리집으로 향했다. 누군가에게는 궁벽해 못 견디던 툇골이 우리에게는 ‘다른 세상’으로 느껴지는 오늘이었다.                                                    

안수정(춘사톡톡 회원)

* 춘사톡톡 : 춘천시민이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독서모임
** 빅3 : 춘사톡톡의 기둥인 세 어른을 지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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