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분위기 싸늘함 더하는 ‘눈속임 기부 지로’라는 지적
모금은 강제가 아닌 자율…의무인 줄 알았다가 낭패
행정안전부, 개인동의 없이 적십자사에 주소 제공

연말연시에 가구마다 배포되는 대한적십자사 지로 용지에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대한적십자사 지로는 매년 연말부터 1월 말을 기점으로 배포되는 자율 모금 통지서로, 의무 납부가 아니다. 그러나 디자인 특성상 눈속임을 통해 기부를 유도한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납부하지 않으면 독촉장처럼 2월 중으로 한 차례 더 배부된다.

지난 17일, 시내 모 아파트 우편함에 지로 용지가 빼곡히 차 있었다. 보낸 곳은 ‘대한적십자사’로, 가상계좌와 함께 1만 원을 납부하라고 적혀 있었다. 용지 디자인도 공과금 고지서와 쏙 빼닮았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의무로 내야 하는 금액으로 착각할 수 있었다. 

특히 노년층이 많이 속아

대한적십자사 지로 용지는 2016년 이후 25~75세까지 소득에 상관없이 배포되고 있다. 대부분 반송하거나 버리지만, 시력이 좋지 않은 노인들은 속을 위험이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 2019년 10월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3년간 회비납부율 하위 10개 시군구는 젊은 층이 많은 도시인 반면 상위 10개 시군구는 모두 노년층이 많은 지방이었다. 퇴계동에 거주하는 박순철 씨(69)는 “매번 올 때마다 의무인 줄 알고 냈다. 나 같은 노인들은 이런 서류를 자세히 따져볼 역량이 없다. 세금고지서처럼 만들어 놓고, 사람을 속였다. 왜 지로 ‘영수증’이라는 단어를 써서 의무 납부인 것처럼 꾸며 놓는지 모르겠다. 국민 전체를 기만하는 행위다. 너무 불쾌하다”고 말했다. 

“내 주소는 어떻게?” 행정안전부가 개인정보 제공

대한적십자사조직법 제8조에 따르면 대한적십자사는 업무수행에 관해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협조를 받을 수 있다. 이를 근거로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가 대한적십자사에 주소, 이름, 나이 등을 포함한 개인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개인정보보호법 제17조에 따르면 개인정보 제공에는 정보주체의 동의가 따라야 한다. 그러나 대한적십자사가 제공받는 개인정보는 별도의 동의 절차가 없다. 이에 개인정보 보호 관련 문제가 많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시민 김 모 씨(29)는 “나는 언제 이사했는지, 몇 살인지를 적십자사에 알려준 적이 없다. 행안부가 무단으로 정보를 흘리고 있는 것 아닌가? 개인정보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는데, 시대착오적인 행위다. 취지만 좋다고 끝나는 게 아니지 않나? 코로나19 때문에 다들 힘들어하는데, 이렇게 또 기분을 상하게 한다”라며 불만을 호소했다.

불쾌한 기부, 납부율은 저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양정숙의원이 대한적십자사로부터 제출받은 정보에 따르면, 지로용지 발송 건수 대비 납부 건수는 2016년 19.9%, 2017년 18.4%, 2018년 17.1%, 2019년 14.5%, 2020년 14.6%로 나타났다. 코로나19를 고려하더라도 현저히 낮은 수치다. 그에 반해 지로를 인쇄하고 발송하는 데에 드는 금액은 1년에 약 36억 원이다. 2016년부터 5년간 지로 제작·발송에만 약 169억1천461만 원이 쓰였다. 이에 따라 고전적인 모금 수법에서 탈피해 ‘진정 자율로 이뤄질 수 있는’ 모금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황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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