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정 (시인)

“탕!”

총알은 고라니의 한쪽 다리에 맞은 모양이었다. 잠깐 운행을 정지한 듯한 사위의 모든 것들이 빠르게 활동을 재개했다. 고라니는 절뚝거리며 본능적으로 달아났다. 공기총을 든 채 벌떡 일어난 총각은 아주 잠깐 바닥에 떨어져 있는, 마지막 한 줄이 빠진 시를 내려다보곤 원두막 밖으로 뛰어나갔다. 고라니는 용케 골짜기 입구의 덫과 올무를 피했다. 총각도 익숙하게 덫을 피한 뒤 피를 흘리며 도망치는 고라니를 쫓았다. 범위를 넓게 잡아도 야산 하나만 넘으면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발목에 감기는 풀들이 비명을 내질렀고 골짜기를 덮은 소나무는 가시 같은 햇살을 뿌렸다. 턱에 차오르는 총각의 숨소리가 거칠어질수록 고라니와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다. 햇살은 점점 골짜기의 나무와 풀들을 노랗게 변색시켰고 어느 순간부터 총각의 두 발이 땅을 벗어나 붕붕 뜨는 것 같았다. 노란 골짜기가 자꾸만 샛노란 진물을 울컥울컥 게워놓는 것 같아 마침내 총각은 달리기를 멈췄다. 고라니도 지쳤는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곳은 뜀박질이 처음 시작된 골짜기 입구였다.

  김도연 작가의 소설 중 《십오야월》에서 <도망치다가 멈춰 뒤돌아보는 버릇이 있다>이다. 오래전 읽은 소설책 한 페이지가 접혀있다. 거기까지 읽었다는 건 아닐 테고 무언가 꽂히는 부분이 있길래 접어놓았을 것이다. 다시 읽으니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이 보인다. 심지어 16년 전의 내가 소설을 읽고 있는 장면까지 떠오른다. 나의 과거 속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소설의 짜릿한 한 구절. 햇살, 소나무가 뿌리는 가시 같은 햇살 때문이리라. 골짜기를 덮은 소나무가 가시 같은 햇살을 뿌린단다, 총각의 두 발이 붕붕 뜨는 것 같고, 햇살로 물든 노란 골짜기가 샛노란 진물을 울컥울컥 게워놓는 것 같아 달리기를 멈췄단다. 대단하지 않나. 다시 읽어도 깜짝 놀랐던 순간이 되살아나는 듯하다. 작품은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지만 1인칭으로 읽힌다. 작가의 일상이 그러할 것이라는 추측 하에. 시인 총각과 고라니와 늙은 사냥개 위리가 펼치는 환상의 세계는 어떤 작위적인 장치도 없이 자연스럽게 현실과 버무려진다. 개집 앞에서 위리를 잡아끌며 시를 읽어주는 장면은 독자로 하여금 웃음을 폭발시킨다. 뿐인가. “위리야…… 인간 세상엔 시란 게 있어. 시가 뭐냐고? 고독한 영혼이 부르는 노래지” 하며 위리에게 시론을 펼치는 것 또한 레전드급 장면이다. 소설에 드러나는 시의 담론이나 세태고발적 대사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작가는 총각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밭주인과 밭주인의 아내로 칭한다. 독자는 때로 작가의 이런 장난스런 시크함에 매료되곤 한다.   

연말이다. 위드 코로나, 대선후보, 부동산, 세 부담 그리고 온갖 다양한 사건 사고들에 심심할 날 없는 한 해였다. 불쑥불쑥 손 내밀며 다가오는 내일이 모여 한 주가, 한 달이, 한 해가 지나고 있다. 쫓기듯 살았다. 그러다가 문득, 버릇처럼 멈춰 뒤돌아보는 것인데 거기에는 잊고 싶은 생채기와 잊지 말아야 할 고마움이 서로 머리를 맞대고 겨루기를 한다. 어떤 때는 ‘생채기’가 이기고 어떤 때는 ‘고마움’이 이긴다. 생채기가 이기는 때는 고요히 나를 감싸 안아야 한다. 무조건 내가 내 편이 되어야 덜 아프다. 고마움이 이기는 때는 다른 이들에게 마음을 내어 줄 수 있어 좋다. 그 힘으로 다시 도망칠 용기를 얻고 또 다른 내일이 내미는 손을 덥석 잡을 수 있다. 햇살을 한껏 머금은 2022년이 내미는 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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