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에 심상치 않은 기후변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은 모두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일 것이다. 이로 인한 많은 부정적인 예측이나 현상 등이 주변에서 목격되고 있다. 와인도 그 영향을 받는 것 중 하나다.

같은 회사 동일 제품이라도 생산연도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것이 와인이다. 생산 당시의 기후조건에 매우 민감한 것이 원인이다. 런던국제와인거래소(Liv-ex)는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와 프랑스 론(Rhone), 이탈리아 피에몬테, 스페인 리오하 등의 산지에서 생산된 와인의 평균 알코올 도수가 상승하고 있다. 이는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생각된다”고 발표했다. 1995년 이들 지역의 평균 와인 도수는 13.1% 정도였으나 2018년에는 14.5%로 상승했다는 통계도 제시되었다. 

출처=프리픽

와인은 포도가 지닌 당분을 효모가 분해해서 만들어진다. 따라서 일조량이 풍부한 해의 포도는 당분이 많으므로 알코올 도수도 높다. 지금까지는 이런 해에 만들어진 와인에 비싼 값이 매겨졌다. 그러나 이런 관행도 지속이 어렵게 되었다. 높은 알코올 함량이 산도를 떨어뜨려, 와인의 품질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적절한 산도와 당도 그리고 알코올 도수와 탄닌 함량 등으로 결정되는 밸런스는 와인 품질의 절대적인 한 축이다. 이것이 깨지면 다른 요소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뿐만이 아니다. 프랑스 농무부는 올해 와인 생산량이 작년에 비해 24~30% 가량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봄철에 내린 서리와 여름철 집중호우가 원인이라고 한다. 이는 197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데, 이탈리아나 미국도 비슷한 수치로 생산량이 줄어들 전망이다. 워싱턴포스트는 “와인 산업은 기후변화, 코로나 펜데믹 그리고 미국 관세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으며 이미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고 있다”고 보도했다.  

 와인을 직접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챱탈리제이션(chaptalization)이라는 말을 알고 있을 것이다. 당도가 안 나오는 포도에 설탕을 넣어 양조하는 방식을 말한다. 아주 오래전, 프랑스는 와인을 위한 일조량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포도의 당도가 낮게 되고 따라서 알코올 도수도 부족하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농무부 장관이었던 챱탈이라는 사람이 설탕을 넣어 발효하는 것을 허가한 이래, 이 말이 생겨났다. 단 포도 당도의 2% 이내로 가당해야 한다는 단서를 붙였다고 들었다. 

그러면 대부분의 포도나 과일의 당도가 부족한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사실 양조용 포도는 아직까지 시험 목적 이외에는 재배하는 곳이 없다. 대부분의 포도 농가에서 기르고 있는 캠벨얼리(Campbell early)는 당도 14브릭스(Brix) 정도가 고작이다. 그러다 보니 최소한 24브릭스까지 올려야 하는 와인 제조업체는 나머지를 설탕으로 채우는 게 현재까지의 불편한 진실이다. 발효학에서는 당도의 50%가 알코올로 변환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적절한 온도 처리를 통하면 60%까지 끌어 올릴 수 있다. 즉, 21브릭스만 돼도 12.6도의 와인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부족한 7브릭스를 어떻게 구할 수 있을까? 필자의 경험으로 가장 간단한 방법은 수확한 포도를 양조 전에 좀 말려서 수분을 날려 버리는 것이다. 물론 생산량은 그만치 줄어들겠지만 품질 면에서는 단연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다. 생식용 포도를 양조에 사용하는 자체가 이미 무리수를 둔 것이니, 차라리 7%의 손실을 품질 향상으로 감내하면 어떨까? 대구에서 생산되던 사과가 이젠 강원도 양구나 영월에서 생산된다. 머지않아 우리도 양조용 포도를 재배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때까지만 이라도….

홍성표(전 한국와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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