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청동기시대는!

한국 고고학사에서 청동기시대의 존재는 북한 고고학자에 의해서 확인이 되었다. 북한 고고학자는 지탑리유적의 발굴을 통하여 신석기-청동기시대 층이 존재하는 것을 층위적으로 증명을 하였다. 이후, 한국 고고학계는 청동기시대의 존재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러나 청동기시대 개시 연대는 북한 고고학자처럼 획기적으로 올리지는 못하였다. 이후, 남한지역의 급속한 개발로 조사가 급증하여 지금은 기원전 15세기까지 소급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되었다.

한국고고학계의 대체로 청동기시대를 조기(早期)-전기-중기-후기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청동기시대 조기에 대해서 다양한 논쟁이 진행 중이지만 사실 내용은 토기 문양의 변화에 집중된 상황이다. 실제, 청동기시대에 구리를 어떻게 생산하고 이를 원료로 어떻게 청동기를 제작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

춘천은 중도동유적을 필두로 온의동, 삼천동, 근화동, 현암리, 신매리, 사농동, 우두동, 산천리, 율문리, 천전리, 내평리에서 청동기시대 사람이 살던 집터가 확인되었다. 댐 건설로 얼마나 많은 집터가 멸실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유적만 보아도 청동기시대 주민이 살기에는 적합한 환경이었음은 틀림이 없다.

그런데 청동기시대 주민과 철기시대 주민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전환기를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유적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청동기시대 시작은?

과거 한국고고학계는 신석기시대 주민과 청동기시대 주민이 교체되었다고 보았다. 지금은 더 이상의 진전된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춘천도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로의 전환기를 보여주는 유적이 있다. 대표적인 유적이 춘천 내평리유적이다. 발굴을 통하여 확인된 토기의 문양과 바탕흙의 차이에서 착안한 견해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청동기시대 조기에 해당하는 유적의 존재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 조기 문화를 보여주는 유적이 춘천에는 두 곳에서 확인되었다. 먼저 확인된 곳은 근화동이다. 한반도 중남부지역에서는 가장 이른 청동기시대 청동 제품 조각이 발견(문화통신 2020년 여름호 참조)되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사농동에서도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와 청동기시대 각목돌대문토기가 함께 조사된 유적이 있다. 빗살무늬토기의 소속에 대해서는 과거 하남 미사리유적 출토 빗살무늬토기처럼 치열한 논쟁이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춘천 근화동유적과 사농동유적

춘천 근화동, 사농동유적과 춘천 내평리 집터는 춘천지역에서 영위된 청동기시대 문화의 다원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신석기시대 주민이 청동기시대로 전환되어가는 모습이 내평리유적에서 확인되고 북방지역에서 이주한 각목돌대문토기문화인들의 집터와 청동 제품이 확인된다는 점이다. 한편, 신석기시대부터 집터가 만들어진 지역이 청동기시대에도 계속 만들어진다는 점은 그 당시 주민의 삶의 터전이 동일지역에서 지속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 요인이 고려되어야 한다.

춘천지역에는 청동기시대로 전환되는 전환기 양상을 보여주는 유적이 계속 확인되고 있다. 앞으로 춘천지역의 정체성을 밝히기 위한 지속적인 연구와 시민의 관심이 필요하다.

심재연(한림대학교 한림고고학연구소 연구교수)


참고자료 : 강원문화재연구소, 2017, 춘천 근화동 786-1번지 유적 / 국강고고학연구소, 2021, 춘천 사농동(808-8번지 일원) 춘천원예농협 추가부지 내 유적 발굴조사  약식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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