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상징주의 대표 시인 아르튀르 랭보가 자기 손으로 출판한 단 한 권의 책이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다. 코로나19로 보낸 세월이 지옥 같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살아가기가 이렇게 힘겨우니 뭐 지옥은 아니더라도 지옥 같거나 지옥에 버금가는 세월임은 틀림없다. 현실 세계가 살아가기 힘들면 그게 지옥이다. 게다가 코로나로 보내고 있는 세월은 한철이 아니라 2년을 넘어서 3년째를 향해가고 있다. 코로나는 지나간 과거형이 아니라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한철로 끝난 과거형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 해본 소리다. 

코로나로 죽어가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코로나 시대에 극단적인 선택이 늘고 있다면 그만큼 살기 힘들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현재 상황을 폭풍전야나 휴화산에 비유하는 사람들이 있다. 곧 몰아칠 폭풍이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산은 두렵기만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10월까지 자살로 인한 사망자 수는 1만714명으로, 전년 같은 기간(1만1221명)보다 4.5% 감소했다. 그러나 그러한 시그널을 청신호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금융위기 때도 그 직후에 자살률이 급증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직후 자살률이 급상승해 2011년에는 인구 10만명당 31.7명이라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가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여러 증거가 있지만, 코로나에 특히 취약한 계층과 세대가 따로 있다. 고용 불안정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만성적인 청년실업에 노출된 20·30대 젊은 층과 여성, 청소년 등이 주요 자살 위험군이다. 지난해 응급실에 온 자살시도자의 20·30대 비율은 전년(37.8%)보다 늘어 43%가 되었다고 한다. 사이버상담코너나 자살예방상담전화인 1393에도 10·20대 상담 건수가 늘었다고 한다. 30대 여성의 자살이 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나 지자체의 대책은 안일하고 더디기만 하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자살 예방 예산이 올해 367억 원에서 450억 원 정도로 22% 증액했지만, 이웃 나라 일본의 8천억 원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예산이다. 전국 229개 지자체 평가에서도 자살예방센터를 따로 둔 곳은 41곳(17.9%)에 불과하고, 대다수는 정신건강복지센터의 팀 단위에서 업무를 담당한다고 한다. 복지부가 200개의 자살예방센터를 신설하겠다고 했지만, 턱없이 부족한 예산으로, 지자체의 자살 예방 정책이 실효성을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돈 문제 만이 아니다. 인력 부족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결국 그것도 예산 문제이기는 하다. 

일본도 총리실에 자살예방대책위원회가 있고, 우리도 국무총리실 산하에 자살예방정책위원회가 있지만, 사정을 들여다보면 내용이 완전히 다르다. 우리는 위원회가 잘 열리지도 않지만, 일본은 이 위원회를 통해 2006년부터 10년간 온 부처가 힘을 합쳐 대책을 추진해 자살률을 37.3% 줄였다. 중앙자살예방센터라는 연구기관이 자살 예방에 관한 맞춤형 연구를 진행하고 있지만 우리는 중앙 단위의 연구기관도 부재하다. 

우리 모두가 하루 빨리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가 뒷날 이 시기를 ‘지옥에서 보낸 한철’이라고 회고할 수 있으려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있다. 더 두텁고 촘촘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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