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스물두 살이란? 언니나 사촌 형, 봄에 만난 교생선생님, 좋아하는 가수 나이겠다. 1970년 11월 13일, 스물두 살 전태일이 몸을 불태우며 노동자들의 현실을 명명히 알렸다. 그는 꼭 껴안은 근로기준법 책에 불을 붙이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숨이 다할 때까지 외쳤다. 죽음 이전에 평화시위가 있었다. 전태일과 바보회 동지들은 평화시장 안의 3만여 명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대로 일할 수 있도록 하자고 투쟁했다. 누구도 들어주지 않았지만.

장편 만화 《태일이》는 5권으로 출판되어 작가의 사실적이고 세밀한 묘사와 환상적인 구도의 컷들로 내용을 돋보이게 한다. 이달 초 애니메이션 영화로도 개봉해, 학년 말 특별 수업으로 학생들과 함께 공동체 관람을 했다. 영화의 마지막 9분간, 9천여 명의 후원자들 이름이 올라가는 엔딩크레딧은 뭉클한 감동이었다. 영화 《태일이》는 분명 우리 시대 ‘태일이’들의 영화이다. 아이들은 영화소감문에서 ‘예기치 않은 감동, 이타적인 삶, 희생, 용기, 노동자 인권, 태일의 외침…’ 등을 기억하며 자신에게 던져진 질문을 되새김하였다. 

50여 년 전,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재단사보조로 일하며 비참한 노동 현실 속에서도 따듯한 인간성을 잃지 않았던 청년의 삶을 쫓는 눈빛들이 살아 있었다. 아이들이 훗날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마침내 제 몫의 삶을 찾아 일터에 나갔을 때, 전태일이 온몸으로 외친 근로기준법을 기억해냈으면 한다. 언젠가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할 때, 만화와 영화 《태일이》의 기반인 《전태일 평전》을 찾아 읽었으면 한다. 전태일이 겪은 노동 현장의 참상과 몸부림을 세상에 전하고자 깨알같이 적은 공책 7권 분량의 ‘전태일 일기’는 조영래 변호사가 쓴 《전태일 평전》의 바탕이 되었다. 삶이 지치고 힘들어 깊은 나락에 빠져드는 순간이 올 때 전태일의 다정한 시선과 용기와 당당한 목소리를 기억해내면 좋겠다. 

국민소득 3만 달러의 뒤안길에서 비정규직과 청년실업자, 영세자영업자들이 울고 있다. 오늘날까지도 노동자 존엄을 지키는 전태일의 마지막 목소리,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먼저 걸어간 등불이 스산한 겨울 길을 비춘다. 작은 촛불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걷는다. 촛불이 모일수록 추운 겨울도 더는 춥지 않다. 나를 뜨겁게, 살아 있게 하는 한마디는 무엇인가? 지금 당장 우리가 함께 실현할 ‘전태일 정신’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우리 마음속 영원한 청년, 전태일의 삶을 따라 방학 중에 책을 읽고 마석 모란공원의 묘역과 청계천 평화시장 버들다리의 기념 흉상을 찾아봐도 좋겠다. 전태일이 친구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유서 한 구절을 다시금 새긴다.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 주게…….”

한명숙(봄내중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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