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자랐던 농촌 마을에는 드문드문 집들이 있었습니다. 할머니 심부름으로 이웃집에라도 갈라치면 굽이굽이 마을 길을 한참씩 걸어야 했습니다. 길가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아는 척을 해대는 통에 그러잖아도 짧은 걸음은 늘 늦어졌습니다. 놀랍게도 마을 사람들끼리는 모르는 일이 없었습니다. 가끔 흉보고 싸우기는 해도 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달려오는 것도 이웃들이었습니다. 집과 집 사이는 멀었지만, 사람들 사이는 참 촘촘했습니다. 

조금 더 자라서는 단독주택들이 밀집해있던 남춘천에 살았습니다. 어디까지가 우리 마을이었을까 생각해보면 조금 헷갈립니다만, 골목골목 모여 놀던 아이들 사이에는 경계가 없었습니다. 온 동네 사람들을 다 알지는 못해도 앞집 옆집 사는 사람들끼리는 종종 왕래도 하고 서로 급한 일도 봐주곤 했습니다. 

지금은 윗집, 아랫집, 옆집 할 것 없이 다른 집들을 이고 지고 삽니다. 집과 집 사이는 더 없이 가까워졌는데 그 안에 누가 사는지, 어떤 사정들이 있는지 거의 알지 못합니다. 가끔 뉴스에서 만나는 이웃 갈등 소식은 흉흉하고 아이들도 집값에 따라 친구를 가르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다들 바쁘게 열심히들 사는데 왜 자꾸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불안할까요? 요즘 같은 세상에 마을과 공동체를 이야기하는 게 가당키나 한 일일까요?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옛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우리에겐 여전히 이웃이 필요하고, 아이들에게도 친구가 필요합니다. 삶이 고되고 어려울 때 기댈 수 있는 따뜻한 이웃, 혼자는 어려운 마을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든든한 이웃, 팍팍한 일상을 보다 즐겁고 의미 있게 채워줄 정다운 이웃들이 필요합니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우리가, 같은 골목을 쓰며 매일 마주치는 우리가, 커다란 지구에서 대한민국에, 그중에서도 춘천이라는 작은 도시에 함께 사는 우리가 진짜 이웃이 될 수 있다면 우리들의 일상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그런 상상을 하며 춘천에서도 마을공동체 지원사업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었습니다. 3년 동안 214개 공동체가 공모에 참여해주셨고, 그중 118개 공동체가 선정되어 활동했습니다. 아이를 함께 돌보는 일부터 마을환경을 가꾸는 일,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나눔, 주민들의 화합과 교류를 위한 축제까지 세대와 주제를 넘나드는 다양한 시도들이 춘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 우리는 조금씩 그리웠던 이웃들의 얼굴을 발견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무엇을 함께 도모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고되고 피곤한 일이기도 합니다만, 여러분의 작은 실천이 ‘이웃이 있어 행복한 도시 춘천’을 만드는 데 귀한 마중물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먼저 선한 이웃이 되어준 공동체와 주민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성길용(재단법인 춘천시 마을자치지원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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