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전 정의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며칠 전 의병을 지휘했던 한 인물의 유적지를 가족과 함께 방문했다. 유적지는 꽤 웅장했다. 유적지 내 전시관에는 인물의 일대기와 활동의 주요 순간들이 멋지게 기록되고 전시되어 있었다. 한쪽에는 논문 모음집, 해설 자료, 또 만화까지 그분과 관련한 다양한 종류의 책이 비치되어 있었다. 전시관 바깥에는 각종 체험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실습장과 숙박공간도 있었다. 유적지 뒤쪽에는 아주 큰 묘소가 자리하고 있었고, 묘소로 가는 길목에는 내로라하는 각계 인사들의 명패가 붙은 기념 식수들이 심겨 있었다. 조경은 풀 한 포기 삐져나오지 않을 만큼 아주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유적지의 모든 공간, 모든 환경이 이분의 훌륭함을 드러내는 데에 집중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공간을 거니는 나는 이상하게도 어딘가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이 불편함의 실체를 찾기 위해 잠시 생각에 잠겼다.

 

유적지를 거닐며 훌륭함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보통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면 어떤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겼거나 많은 이들에게 본이 될 만한 행동을 한 사람을 말하는 듯하다. 그런 측면에서 외세의 침략에 맞서 의병을 일으키고 지휘했던 이분이야말로 나라를 구하는 데에 큰 공을 세운 훌륭한 분임은 두말할 나위 없다.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들, 전국 곳곳의 유적지와 전시관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또 다른 훌륭함이 있다. 역사적인 인물들의 훌륭함을 세상에 내보이기까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한 역사학도, 역사학자와 같은 기록자들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 기록서를 뒤지고 증언자를 찾고, 유물을 발굴한 이들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의 역사도, 역사 속 인물들의 빛나는 활동들도 우리는 전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또 있다. 직위는 없지만 결연한 마음으로 대의를 위해 용기 있게 행동했던 이들이다. 예를 들면 전국의 의병들이 그러하다. 신분 차별과 가난을 겪으면서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의 훌륭함은 결코 이들의 지휘관 못지않다. 

또 있다. 아주 멋지고 훌륭한 사람임에도 가부장적 사회문화 속에서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해 역사책에서 가려지고 지워진 수많은 여성이 그러하다. 대부분 여성에게는 훌륭한 일을 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역사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갓 쓰고 수염 기른 남성들이라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역사가 계급과 성별을 가려왔음을 보여준다. 양반 남성들만의 역사가 아니라 모두의 역사를 남기는 직업이 필요하다.

화려한 유적지를 나서는 뒷맛이 이상하게도 씁쓸했던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훌륭함을 기록하는 방식이 한 개인에게 집중된 게 못내 불편했다. 역사의 무게를 떠받치고 그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한 기록자들, 의병들, 여성들의 공로는 훌륭한 한 사람을 기리기 위해 자원이 총동원된 이 공간 속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공로가 한 개인에게만 집중되는 방식으로 기록화되는 작업은 잠들어계신 의병 지휘관님께서도 절대 원치 않으실 것 같다. 전국의 많은 유적지가 이런 형태를 띠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본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제라도 유적지 내 잘 보이는 곳에 역사를 함께 밀어 올린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하면 좋겠다. 우리 시민은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자기 이름 한 줄 못 챙겨온 수많은 이들에 관심 두고 마음 깊이 기리면 좋겠다.

이효성(전 정의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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