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도시 조성사업 〈도시산책자〉 & 〈일당백 리턴즈〉의 의의

문화도시 조성사업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시민이라면, 사업이 건축이나 건설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것을 잘 알 것이다. 

사실 춘천은 1995년 ‘올해의 문화자치단체’로 선정되는 등 오래전부터 문화도시로 불렸다. 마임축제, 연극제, 인형극제 등 다양한 축제와 많은 예술가들의 활동 덕분이다. 하지만 법정문화도시 조성사업을 통해 앞으로 펼쳐질 문화도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비전을 제시한다. 춘천시가 추구하는 문화도시는, 문화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를 없애고 시민 스스로가 일상 속에서 문화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를 압축한 개념 또는 비전이 이른바 ‘전환문화도시’이다.

도시산책자들은 춘천에 대한 새로운 감정과 해석을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했다.      사진 제공=이원일 산책자

건축 조성처럼 과정과 결과가 눈에 잘 띄는 사업이 아니라서 밖에서 보면 변화를 체감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참여하는 사람만 참여하거나 한 개인의 일회적 경험으로 머문다면 과연 춘천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가? 라는 의심도 가질 수 있다.

문화도시 사업 현장에서 많이 오가는 말 중에 시민력과 문화력이 있다. 시민력은 정확하게 정의되지 않았지만, 자율적인 시민이 연대하여 지역 공동체의 운영에 참여하고 새로운 지역으로 만드는 힘 또는 자주적, 자발적으로 지역의 문제를 다른 이들과 함께 해결하려는 의식을 가진 시민들의 힘이라 볼 수 있다. 시민력은 다양한 시민참여 활동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고 성장한다. 시민의 문화력도 마찬가지이다. 

법정문화도시 조성사업 1년이 지났다. 코로나라는 악조건 속에서도 지난해 많은 시민들이 다양한 프로그램들에 참여하며 ‘관망자에서 참여자’로, ‘경험자에서 역할자’로 문화력을 기르며 전환을 위한 씨앗이 심어졌다. <도시편집자 1기 : 도시와 대화하는 도시산책자> 17명의 시민들과 <일당백 리턴즈> 64명의 시민들이 대표적이다.

만나고 시도하고 연결되는 ‘판’이 깔리다

<도시편집자 1기 : 도시와 대화하는 도시산책자>(이하 도시산책자)는 도시를 산책하며 느끼는 다양한 시선과 경험을 통해 춘천의 새로움을 찾는다. 17명의 시민들은 지난 9월~11월 수차례의 개별 산책과 두 차례 그룹 산책, 중도 산책, 4차례 대화모임 등을 진행했다. 산책을 통해 도시와 대화하고 익숙한 도시 춘천을 낯설게 바라보고 읽었다. 그 과정에서 춘천에 대한 각자의 새로운 감정과 해석을 나만의 방식으로 기록하고 각자의 시선과 이야기도 공유했다. 

‘도시산책자’는 지난해 9월~11월에 활동한 결과를 소개하고 공유하는 전시회 <낯선 시선 낯선 기록>을 지난 7~9일 복합문화공간 용궁장에서 진행했다. 시민의 기록은 향후 지속적으로 아카이빙되어 춘천을 알리는 콘텐츠가 된다. 잘만하면 춘천에 대한 다양하고 많은 이미지와 해석이 쌓인 춘천 백과사전이 될 수 있고, 먼 훗날 춘천을 연구하는 자료로도 활용될 수 있다.

도시산책자 최희순씨는 자신만의 관점이 담긴 춘천을 사진과 글로 스크랩했다.

최희순(30·간호사) 씨는 “춘천을 새롭게 알게 됐다. 특히 소양 1교의 흉터 같은 자국이 한국전쟁 춘천대첩의 총탄 자국임을 처음 알게 됐다. 춘천의 역사와 문화를 보물찾기 놀이하듯 찾아다녔다. 모든 과정을 사진과 글로 기록하고 스크랩했는데 살면서 이런 글쓰기는 처음이었다. 몰랐던 재능과 즐거움을 발견해서 내 삶도 조금은 바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1기 활동은 끝났지만 다양한 글을 쓰며 동료들과 혹은 나만의 기획으로 활동을 이어가겠다”라고 말했다. 서주영(59·원예치료사)씨는 “워낙 걷기를 좋아해서 스페인 도보여행을 다녀오고 작은 전시회도 했었다. 그동안에는 자연 속 산책이 중심이었는데 도시산책을 문화적으로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해서 참여했다. 늘 다니던 정해진 길을 벗어나 팔호광장 뒤편의 골목길, 후평동의 오래된 양옥집 등 낯선 길과 새로운 곳을 산책했다. 예전에 살던 봉의동 골목길도 20여 년 만에 다시 찾아가 변화된 모습을 확인했다. 고층아파트가 늘어나는 춘천, 아직 남아있는 풍경과 다양한 삶을 통해 자연스레 동네의 역사도 알게 됐다. 도시산책은 사람과 사람의 흔적이 주인공이다”라고 말했다.

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 시민문화팀 권현아 팀장은 “앞으로 1기들이 도시산책자에서 도시편집자가 되는 심화과정이 운영되고, 2기도 새로 시작된다. 도시에 대한 서로 다른 시선들을 공유하고 다름을 인정하고 도시가 필요로 하는 것을 발견하면서 시민력이 커가길 희망한다. 궁극적으로는 문화재단의 지원 없이도 참여자들이 춘천의 새로움을 널리 알리고 방문자들에게 춘천만의 모습을 소개하는 커뮤니티로 발전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일당백 리턴즈>는 시민이 평소 다양한 제약으로 시도하지 못했던 ‘쓸모있는 딴짓’을 지원한다. 1기 활동에 이어 대학생·회사원·학원강사·예술가·은퇴자 등 15명의 2기들이 지난해 9~11월 에세이작가 되기, 뮤직비디오제작, 플로깅아트, 사진집 제작, 굿즈만들기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 8일 활동공유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딴짓’을 통한 삶의 전환과 향후 계획을 밝혔다.

정나래 씨는 “시작하는 게 어려웠다. 돈도 문제지만 마음속에 두려움과 망설임이 발목을 잡았다. 그런데 같은 마음과 갈증이 있던 사람들이 모이는 판이 깔리니 ‘할만하네’ 자신감이 생겼다. 지원금도 힘이 되지만 나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게 큰 힘이 됐다. 이런 활동에 참여하면서 단순한 향유자에서 기획자·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자신감, 만남이 연결되어 더 큰 활동으로 이어갈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라고 말했다.

명해 씨는 “어렵고 멀게만 생각된 환경 보호, 하지만 플로깅의 매력에 깊게 빠졌다. 나의 고민과 활동이 인정받는 계기였고, 같은 마음을 지닌 사람들과 교류하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며 생각의 폭도 넓혔다. 이런 경험이 가져오는 변화가 도시 전체에 빠르게 드러나지 않겠지만 시민참여가 늘어나면 춘천의 문화가 더 풍성해질 거다.” 안수연 씨는 “원래 캐릭터 사업을 직업으로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못했었는데 굳이 본업이 아니더라도 해볼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일당백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나도 해보고 싶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게 중요하다. 살기 좋은 도시는 거창한 게 아니라 시민참여 프로그램이 많고 네트워킹할 수 있고 시민이 활기찰 수 있는 사업이 많은 도시 아닐까?”라고 말했다. 

‘주체가 되어 지속적으로 활동하고파’

현재 18개 도시가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되어 있다. 춘천뿐만 아니라 각 도시의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성패는, 개별 사업에 참여한 시민들이 기관의 도움 없이 개인이나 팀 또는 커뮤니티를 형성해서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가느냐에 달려있다. 지역의 문화력을 키워가는 주체가 되어 새로운 의제를 설정하고 다시 실행하고, 시와 문화재단은 협력하고, 실행결과를 다 같이 평가하고 다시 개선하는 등 선순환이 실현되는 도시가 진정한 시민주도의 문화도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돈·정성 등 적지 않은 비용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물었다. 그걸 알면서도 기꺼이 나설 수 있는 동기와 의욕이 생겼느냐고 말이다. 

7~8일 복합문화공간 용궁장에서 만난 <도시산책자>와 <일당백 리턴즈> 참가자들 상당수가 ‘그렇다’라고 답했다. “같은 생각을 하는 동료를 많이 만났다. 함께하는 기획을 구상하고 있다”, “예전과 달리 겁이 나지 않는다. 해볼 만하다”라고 말이다. 물론 “솔직히 참여자에서 주체자가 될지는 좀 더 고민의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내 삶에 전환을 위한 파장은 불러일으켰다.” 등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 참여자도 있었다. 하지만 문화도시 조성사업의 첫해를 지나며 향유자에서 생산자로 조심스레 전환을 엿보는 문화시민의 씨앗이 심어졌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법정문화도시 조성사업 2년 차가 시작됐다. 활동을 통해 ‘공통감각’을 갖추게 된 이들이 커뮤니티로 성장하여 여전히 관망하고 있는 더 많은 시민들에게 연결되길 기대한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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