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운순 (강원이주여성상담소장)

2022년 첫날 시무식을 막 끝낸 상담소에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의 사람이 침묵했다. 이주상담소에서 발신자의 침묵은 위험 신호다. 막상 전화를 했지만 한국어가 서툴러 언어를 고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 그럴 경우 우리는 대부분 침묵 너머에서 연결되는 숨소리에 주목한다. 남편 폭력으로 집을 나온 여성일 수 있고 취업이민으로 들어왔다가 미등록 상태로 숨어 지내는 이민자일 수 있다. 알 수 없는 발신자는 거친 호흡을 끊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모아 샘을 ……. 바꿔주세요.”

한 글자 한 글자 한국어를 힘들게 구사하는 여성은 베트남 이주상담사 모아 샘을 찾았다. 베트남어로 길게 통화를 마친 모아 샘이 전화를 끊으며 말했다.

“아이샤님 남편이 돌아가셨대요. 오늘 새벽에.” 

아이샤는 국제결혼으로 베트남에서 이주한 여성이다. 20년 연상의 남편은 결혼한 지 5년째 되는 해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말하자면 아이샤 남편의 부고 소식이었다. 장례식장을 H병원으로 정했다고 하여 일단 사례담당자인 모아 샘이 H병원으로 출발했다. 한국에 온 지 15년이 넘어가지만, 아이샤는 한국어를 거의 구사하지 못했다. 결혼 5년 만에 쓰러진 남편을 간병하느라 거의 병원 밖을 나오지 못했다. 지방에 사는 손위 시누가 올라오는 일요일 단 하루 한글교실에 참석했다. 그나마 고령의 시누가 올라오지 못하는 날이 많아 아이샤의 한글교실 출석률은 낮았다. 한 달 전에야 상담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은행에 가서 통장을 개설하고 혼자 버스를 탈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장례절차를 지원하기 위해 병원에 가 있던 모아 샘에게서 전화가 왔다.

“빈소를 차릴 수 없대요. 돈이 없어서 안치실에 있다가 그냥 발인하고 화장한다고 해요.”

아이샤의 남편은 기초수급자였다. 형제라고는 팔순이 넘은 손위 시누가 전부고 경제적 바탕도 사회적 연결고리도 없어 ‘무빈소 직장(直葬)’으로 결정했다는 소식이었다.

문득 남편의 마지막을 안치실에 둔 채, 병원 복도를 오갈 아이샤의 얼굴과 사례 지원을 위해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 때 벽에 걸렸던 결혼사진이 떠올랐다. 오른쪽 손가락을 들어 브이 자를 긋고 있던 신랑, 액자 아래에는 ‘당신만을 사랑해’라는 글씨가 검은 매직으로 쓰여 있었다. 일단 무빈소 결정은 잠시 미루자고 했다. 이리저리 알아본 끝에 무연고자의 장례를 지원하는 NGO 단체를 소개받았고, 다행히 빈소를 준비할 수 있었다. 빈소를 차린 사흘 내내, 상담소 직원을 포함한 몇 안 되는 지인이 고인을 추모했다. 고인은 평생을 살아낸 육십여 년보다 지난 사흘이 행복했을 거라고 아이샤와 고인의 누나가 말했다.   

여성의 이주화와 국제결혼, 이주여성과 그 가족의 경제적 빈곤이 죽음 이후 존중받을 공간까지 위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였다. 세계 인권선언 제1조에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고 되어 있다. 인간의 권리는 살아있을 때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죽음 이후 차별 없는 존엄성을 포함할 때 진정한 인간의 권리가 지켜지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샤님의 애도 공간을 마련해 주신 (사)나눔과 나눔, 그리고 마음을 모아 전달한 강원 이주여성상담소 선생님들, 사흘 내내 빈소를 지킨 모아 샘과 L 수녀님께 이 글을 빌려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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