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서(소설가)

친구는 고교 시절 가정불화를 겪으며 크게 방황하다가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검정고시를 보고 전문대학을 나와,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낳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이 조금 자라자 세무사 사무실에 다니며 워킹 맘으로 더 부지런히 살았다. 

친구는 가끔씩 “내가 고등학교를 제대로 못 다녔잖아” 혹은 “내가 4년제 대학을 못 나왔잖아”하며 솔직하게 자신의 콤플렉스를 털어놓았다. 고등학교를 억지로 다니고, 4년제 대학도 겨우 졸업한 나와 다른 친구는 “어차피 학교에서 배운 거 하나도 없어”라고 말했지만, 친구에겐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자신의 콤플렉스를 감추려고 잘나가는 지인과의 친분을 강조한다거나, 오래전 영광을 반복해서 말하는 이들을 종종 본다. 그런 사람들에 비해 제 콤플렉스를 제대로 알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그 친구가 좋았다. 

여기까지도 대견한데, 마흔이 넘어 친구는 세무사 자격시험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시험을 보기 위해선 우선 토익 700점을 넘겨야 한단다. 요즘 젊은이들에겐 토익 700점이 어쩌면 별 거 아닌 일일지도 모르지만, 중학교에 입학해서 알파벳을 배우고, 성문종합영어가 문법의 정석인 줄 알고 배웠 던 우리에게 토익 700점은 높은 벽이었다. 게다가 그 친구가 자주 말하는 검정고시 출신의 전문대 졸업자에겐 더 높은 벽으로 느껴졌을 거다. 

워킹 맘은 일과 가사, 육아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란다. 모두 워킹 맘인 우리는 겨우 두세 달에 한 번 작정을 하고 만나서 저녁을 먹고, 맥주를 한잔하고, 노래방에 간다. 친구는 그 순간에도 영어 공부를 하겠다며 팝송만 불렀다. 친구의 어설픈 발음에 우리가 폭소를 터트려도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4년이 지나 친구는 토익 700점을 넘겼고 바로 본격적으로 세무사 자격시험 준비를 했다. 친구는 9시에 출근, 저녁 6시에 퇴근하는 직장인이었다. 퇴근 후 바로 아이들 저녁을 먹이고, 밤 9시에 독서실로 다시 출근해 12시에 돌아온다고 했다. 그렇게 부지런히 사는 친구의 모습이 감탄스러웠지만, 과연 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더 컸다. 친구의 실력은 알 수 없었지만, 워킹 맘의 일과는 잘 알기에 드는 기우였다. 

그렇게 다시 3년이 지나, 지난 12월 친구는 시험에 합격했다. 마지막 6개월은 직장을 그만두고 공부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커트라인을 겨우 넘겼다며 “그게 실력이야” 하고 여유롭게 웃는 친구가 새삼 더 멋져 보인다. 친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대학에 편입도 하고, 대학원까지 다닐 생각이라고 한다. 친구가 계획대로 모든 걸 해나갈 거라는 걸 이제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린아이들을 돌보면서도 어려운 시험에 합격했는데, 이제 아이들도 다 자랐는데 못할 게 무얼까. 커트라인을 겨우 넘겼다는 건 친구의 겸손한 표현일 테지만, 모든 시험이란 게 한 문제에 당락이 결정되기도 한다. 

지금 난 친구가 시험에 합격했다고 자랑을 하고 있는데, 여태껏 이 친구가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자랑해 본 적은 없다. 어느 가을날, 신호 대기 중 노랗게 물든 가로수들을 보며 ‘여기 이렇게 은행나무가 많았구나’ 깨달으며 새삼스레 감탄한 적이 있다.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기 전에도 그 자리에 은행나무로 있었던 것을. 잎을 노랗게 물들이고 열매를 맺기 위해 안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던 것을. 여태 알아보지 못하다가 잎이 노랗게 물들고 나서야 은행나무인 줄 알아보는 미천한 나의 안목까지 반성하게 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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