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는 잔에 따라 와인 맛이 달라질까? 가끔 듣는 질문이다. 대답은 주저할 것 없이 ‘그렇다’ 이다. 같은 와인인데 담는 용기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것이 말이 되나? 얼핏 비논리적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왜 사실이라고 말하는지 그것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본다.

우선 레드와 화이트는 잔이 달라야 하는 것에 주목해 보자. 이유는 간단하다. 화이트는 아이스 버킷에 채워두고 마신다. 차가운 온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자주 따라 마시려면 잔이 작아야 유리하다. 반면 레드는 느리게 산화되어 향이 피어오르는 때를 기다려야 하므로 잔이 커야 한다. 실제 최고급 식당에서 고급 와인을 주문하면 레드의 경우 어린애 머리통만 한 잔이 서빙된다. 

출처=프리픽

이번엔 각 지역 와인의 특성을 살펴보자. 프랑스를 예로 들어 본다. 보르도 지역의 포도는 대부분 ‘까버네 소비뇽’ 이나 ‘메를로’ 가 주종이다. 이를 섞어서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 품종들은 강한 향과 두터운 바디감이 특징이다. 따라서 향을 잔에 가두는 것보다는 적당히 휘발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르도 와인 잔이 밋밋하고 갸름한 모양을 하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부르고뉴 지방의 ‘피노누아’라면 얘기가 다르다. 향이 약한 대신 아주 섬세하게 여러 향이 복합되어 있다. 세계 최고의 와인인 ‘로마네 꽁띠’는 이 포도로만 생산된다. 따라서 커다란 몸체에 윗부분이 오므라든 와인 잔이 선호된다. 가급적 향을 많이 잔에 가두고 천천히 즐기기 위함이다. 

이런 분류를 처음 생각하고 그에 맞는 제품을 생산한 회사가 와인 잔의 명가 리델(Ridel)이다. 다양한 잔을 처음 생산할 당시의 사주는 ‘조지 리델’이었다. 모든 실험을 마치고 이를 확신했던 그가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이 미국 와인의 대부 ‘로버트 몬다비(Robert Mondavi)’였다. 캘리포니아에서 지금도 최고급으로 치는 ‘오퍼스 원(Opus one)을 생산하는 양조장의 설립자이다.

 열띤 설명에도 몬다비가 얼른 수긍하지 않자, 리델이 제안했다. 지금까지 그가 선호하던 와인을 가져다가 각기 다른 잔에 따라 마셔보고 결과를 확인해 보자는 거였다. 결과는 그를 설득하기에 너무나 충분했다. 깜짝 놀란 몬다비가 기존의 모든 잔을 버리고 각종 와인 잔을 주문한 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다음에 찾아 간 사람이 《와인 애드버킷(Wine Advocate)》의 발행인, ‘로버트 파커(Robert Parker)’ 였다. 그는 와인 잡지의 사주보다도 매년 각종 와인을 시음해 보고 점수를 매기는 것으로 더 유명한 사람이다. 그가 매긴 점수에 따라 와인의 판매고가 달라질 만큼 업계에 영향력이 대단했다. 그 역시 똑같은 제안을 받고 직접 시음에 응했다. 결과는 그가 내뱉은 말로 대변할 수 있다. 

“아! 지금까지 시음해서 점수를 매긴 것을 모두 다시 해야 한단 말인가?” 

와인은 어디까지나 기호품이기 때문에 엥겔계수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것에 동의하고 기왕 와인을 즐겨보기로 했다면, 잔에도 약간의 투자를 권한다. 인생을 맛있고, 멋있게 사는 ‘소확행’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흔히 말하는 투자 대비 가성비로 비교해봐도 과히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것 같아서다.

홍성표(전 한국와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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