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미 (춘천여성협동조합 이사장)

넷플릭스 드라마 <고요의 바다>를 보노라면 실로 디스토피아의 시대가 현실처럼 느껴진다. 문득 아파트에서 밖을 바라보노라면, 저쪽 아파트 귀퉁이에서 좀비떼가 출몰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고는 한다. 영화 <돈룩업>에서 지구가 멸망하고 있다고 아무리 호소를 해도 삼류농담으로 일관하는 토크쇼처럼, 우리는 어쩌면 턱밑 끝까지 차오르는 지구의 죽음을 정말 한 치도 모르는 것은 아닐까. 1980-90년대 이념의 시대를 지나 시대의 가치와 양식이 변모함에도, 나라는 사람은 끝까지 변하지 않아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살겠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패착이 아닌가 감히 생각해본다. 

필자가 현재를 ‘멸망의 시대’라고 말한다면, 반감을 표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을 돌아보라. 코로나 팬데믹과 이상기후 이슈들은 여전히 우리 곁에 딱 붙어 있고, 드라마의 주요 소재가 지구의 멸망, 기후위기, 좀비, 생존게임 등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의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처럼 세계는 신자유주의의 구렁텅이에서 기후위기를 촉매로 더욱더 디스토피아 행진이 빨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그냥 이대로 살겠냐고 당신에게 물어보고 싶다. 

거대양당의 대통령 선거가 한창인 겨울이다. 연일 뉴스는 코로나 아니면 대통령 이슈로 끓어 넘친다. 필자는 이번 선거에서 그들만의 아귀다툼이 아닌 더 다양한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기후위기, 젠더, 노동, 공동체와 관련된 새로운 희망의 씨앗들.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자본주의에 먹먹히 젖어버린 인류에게 일종의 생명줄 말이다. 후대들에게 그래도 살만한 삶이라고 기꺼이 말할 수 있으려면 물질의 풍요보다는 공동체의 풍요가 흘러넘쳐야 한다. 기후위기와 자본주의로 망가진 이 땅에서, 그럼에도 살만하다고 말하고 싶다. 

얼마 전, 최연혁 교수의 《알메달 렌, 축제의 정치를 말하다》라는 책을 만났다. 스웨덴에서는 여름 휴가철, 알메달렌 주간이 있다. 고틀란드섬의 작은 마을 알메달렌에서는 정치인들과 시민들이 모여 정책을 소개하고 질문하고 토론하는 축제의 정치를 연다. 네거티브 선거에 찌들어서 누군가를 혐오하거나 공격하지 않으면 이번 선거는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대한민국 사회 정치환경에서 ‘축제의 정치’라니. 우리도, 그런 게 가능할까? 

진보적 의제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던 이른바 진보정당의 목소리는 날로 그 힘을 잃어가고, 거대양당의 후보만이 언론에 노출되어 연일 시끄럽다. 

‘누군가의 음모일까, 누군가의 실수일까, 누군가의 비리일까’에 힘을 쏟다 보면 이내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래서 내가 원하는 후보는, 거기에 있던가? 내가 원하는 세상은 어느 후보가 대변해주고 있을까? 나는 오래전부터 지더라도 이기는 선거를 바라고 있다. 선거도 모르는 철부지라고 말할 수 있겠다. 선거는 당선이 목표이지, 모든 걸 던지는 후보 앞에서 ‘지더라도 이기는 선거’라니, 무슨 어불성설인가. 오랜 기간 진보정당에 몸담고 크고 작은 선거를 참여하고 지켜본 나는 아직도 할 말을 다 하는 선거를 꿈꾼다. 시민들의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축제처럼 새벽공기를 가르며 아침 선거운동을 하고 함께 웃고 함께 꿈꾸는 그런 선거 말이다. 코로나가 덮쳐오고, 물 폭탄이 쏟아붓는 멸망의 시대라고 할지라도 희망을 가꾸는 삶이라면, 그래도 상당히 괜찮은 인생이 될 것이다. 멸망의 시대에 살아남는 법은, 그럼에도 희망하는 것. 당신의 꿈이 세상을 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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