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주 작가가 전시 타이틀로 붙여 놓은 단어는 ‘불멸낭만(不滅浪漫)’이었다. 이 부딪히는 조합에, ‘먼지로 쓴 시’는 한층 더 아이러니한 명제처럼 보였다. 금세 흩어져버리고 말 먼지로 시를 쓰다니…. 작가는 아무도 읽을 수 없는 시를 쓰겠다는 것일까? 풀 수 없는 의문을 품고 그의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전시 도입부에 걸려있는 <라스트 카니발>에 자연스럽게 먼저 시선이 갔다. 빛바랜 청록의 그 그림에는 먼지처럼 가루를 날리며 사라져갈 예정인 하얀 기둥이 정중앙에 위치해 있었다. 문득 나는 한선주 작가의 2020년 개인전에서 본인의 척추뼈를 그린 그림(<아뇨 난 후회하지 않아요>, 2019)을 떠올렸다. 휘어진 척추뼈가 마치 얼음기둥처럼 중앙에 서 있고, 그 뒤로 밤하늘별처럼 뼛가루가 반짝이는 그림이었다. 그때의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저 길고 하얀 기둥, 그것은 기다란 나무일 수도 있고, 기둥처럼 보이는 연기일 수도 있으나, 나에겐 그것이 그녀의 휘어진 척추뼈로 보였다. 앙상한 나뭇가지와 고목들을 배경으로, 정 가운데 겨우 서 있는 저 위태로운 등뼈는 연기가 되어 흩어져 가고 있는 중이다. 

그 모습을 한 사람이 마치 불멍 하듯 가만히 들여다본다. 본인이 몸을 뉠 곳을 하얗게 쓸어 낸 자리에는 가느다란 빗자루와 그루터기 하나, 돌탑과 석등, 동그란 우물만이 있다. 하나하나의 도상들은 어느 것도 함께하고 있지 않으며 서로 간의 일정한 거리를 지켜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처럼 작가는 위안을 주는 대상들을, 정성껏 쓸어놓은 자리 위에 고요히 올려놓았으나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개별자로 표현하고 있다.

타원의 경계를 기준으로 펼쳐지는 두 개의 세계는 작가에 의해 ‘불멸’과 ‘낭만’으로 명명되는 ‘영원’과 ‘찰나’의 공간이다. 물결 속에 부유하듯 어지럽게 떠 있는 고목들과 나뭇가지들, 물과 하늘의 구분조차 모호한 청록빛의 저세상이 불멸의 세계라면, 낭만은 아름답게 사라져가는 존재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무채색의 인물을 통해 깨닫게 되는 유한성에서 기인하고 있다. 이처럼 전시 제목인 “불멸낭만”은 각각 죽음과 삶에 대응하며 인간존재가 지닌 화두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이곳과 저 너머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유일한 저 등뼈, 찰나와 같은 존재의 슬픔은 그러므로, 불멸의 공간으로 사라지는 ‘먼지로 쓴 시’가 되어 덧없이 빛나고 있다.

정현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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