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순금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

지난해 12월 15일 오후, 우두동의 한 아파트에서는 한 가족이 모처럼 함께 영화를 보려고 거실에 둘러앉았다. 겨울 햇살이 집안을 나른하게 데우고 특별할 거 없는 대화가 간간이 오가던 중 요란한 핸드폰 벨소리가 정적을 깼다.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가족들의 눈빛을 받으며, 한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목소리는 담담했다. “안녕하세요? 여기 한국일보사입니다. 0000님 맞나요?” 

지역에서 시민운동가로 알려진 남궁순금 씨가 ‘2022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에 당선되며 소설가로 등단하는 순간이다. 한국일보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은 그의 작품에 대해 “척력의 시대에 자신과 타인 사이의 간극을 좁히려고 애쓰는 모습에서 작가의 사명을 보았다”고 평했다.

::: 오랜 빚을 갚다

초등학교 4학년 소녀는 커서 작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그 약속을 지키는 데 50년이 걸렸다. 오랜 세월 응원해준 이들에게 진 마음의 빚도 갚았다.

그는 홍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춘천으로 이주해 와 봉의초, 춘천여중, 춘천여고를 다녔다. 그에게는 늘 ‘글 잘 쓰는 아이’, ‘작가가 될 아이’라는 수식이 따랐다. “초등학생 시절 위문편지를 쓰면 선생님이 칠판에 붙여놓고는 ‘순금이 처럼 쓰면 된다’라고 하셨죠. 저축수기 공모, 웅변대회, 각종 백일장에 당연한 듯 나갔고 교지에는 늘 내 글이 실렸죠. 사람들에게 남궁순금은 ‘작가가 될 아이’였어요.” 

최인훈 소설가가 후진을 양성하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로 진학하여 신경숙, 장석남 등의 동기들과 수학했다. 졸업 후에는 3차에 걸친 까다로운 시험을 거처 MBC 교양제작국 구성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1987년부터 <차인태의 출발 새아침>, <마광수의 밤의 예술기행> 등에서 메인 작가로 활동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은 “여전히 글 쓰지?”라며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그는 알고 있었다. 그들이 말하는 글은 다른 글이라는 것을. 작가로서의 글쓰기가 늘 인사말로 따라와 마음의 빚으로 쌓여갔다. “많은 이들에게 특히 나에게 빚쟁이가 되어 연말이 되면 ‘올해도 가는구나 또 한 해가 가 데뷔라도 하고 죽어야지’라는 심정도 생겼어요.(웃음) 당선 전화 받았을 때 기분이요? ‘휴 드디어 빚을 갚았구나’였어요. 사실 신춘문예와 문학상에 과거 몇 차례 응모했었어요. 하지만 그저 꿈에서 멀어져 가는 나를 위로하고, 글쓰기를 내려놓지 않았다는 억지 위무였죠. 작품이 마음에 든다거나 이건 될 거라는 기대는 전혀 없었어요. 이번에는 100매 가까이 쓰는 내내 진심으로 즐겁게 몰입했고 후회 없이 썼습니다. 그래서 내심 기대도 했어요. 한국일보에서 상을 받던 날 당선 소감을 말할 때, 대부분 청년인 다른 당선자들은 적어온 소감을 떨면서 읽었지만 난 담담했어요.”

::: 춘천에서 인생 2막

1990년 봄, 그는 한 소설가의 작품을 무척 좋아했다. 그런데 마침 구성작가 선배가 그 소설가를 인터뷰한다기에 따라갔고 그게 인연이 되어 그해 초가을에 결혼을 했다. 하지만 순탄하던 서울 생활은 오래가지 않았다. “상계동에 살았는데 집주인의 형편 때문에 전세금을 많이 올려줘야 했어요. 그러자 교장이신 친정아버지께서 춘천에 내려와 글 쓰며 살라고 제안하셨죠. 부모님은 관사에서 지내셨기에 마침 후평동 본가가 비어있었어요. 고민이 길진 않았어요. 방송 일에도 많이 지쳐있어서, ‘이건 본업이 아니야. 내 글을 써야 해’, ‘나와 남편 둘 다 조용한 곳에서 본격적으로 글을 써야지’하는 마음도 컸어요. 좋은 환경에서 아이도 잘 키우고 싶었고요.” 그렇게 1992년 겨울 춘천으로 돌아왔다. ‘왜 데뷔 안 해?’, ‘왜 남편 그늘에 묻혀있어?’, ‘왜 춘천에 내려가?’ 등 지인들의 염려를 뒤로 하고. 

::: 가정주부에서 시민운동가로

그는 당초의 다짐과 달리 평범한 주부로 살아갔다. “고단한 서울을 벗어나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조용히 살았어요. 활동적이기도 하지만 처박혀 있는 것도 좋아해서 그리 답답하지 않았죠.”(웃음) 

익숙한 일상을 보내던 그가 한국 사회에 유감을 표하며 삶에 긴장의 끈을 다시 조이게 된 일이 벌어졌다. 1997년 한국은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다. “외환위기 당시 여성이 우선적으로 해고되는 등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차별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 없었어요. 평소 아이 유치원과 이웃으로 만나 교류하던 여성들도 같은 마음이었죠.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한국여성민우회 춘천지부’를 만들기로 했어요. 1998년 뜻있는 여성들·활동가·기자·학자·방송인 등이 모여서 준비위원회를 꾸렸어요.” 그의 나이 39살 1999년에 춘천민우회를 창립하고 2001년까지 한 번, 그리고 2012~14년 한 번 더 상임대표를 지냈다. 

::: 페미니즘은 평등이고 존중… 정치와 언론이 왜곡하며 대립조장

“여성이 어떻게 차별받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민우회 활동을 통해 깨달았어요. 거침없이 할 말 다 하며 살았지만 나 또한 여성으로서 차별받으며 살아왔다는 것도 그제야 인지했죠. 특히 아이를 낳은 아줌마가 되면 일상에 만연한 차별이 더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민우회 활동을 통해 더 깨닫고 공부하고 성장했어요.”

여성들이 민우회 활동으로 깨어나 주체적 삶을 사는 데 도움을 주고, 학교 내 성폭력, 양성평등에 크게 기여했지만 여전히 과제가 많음을 지적한다. “가정 내 성폭력, 여성 1인 가구 확산에 따른 치안, 스토킹, 데이트폭력 등 함께 고민하고 개선할 일들이 많아요. 그런데 페미니즘이 적대시되는 분위기가 염려스러워요. 페미니즘은 서로에 대한 평등이고 존중인데 정치와 언론이 왜곡하며 대립을 조장하고 있어요.”

::: 다시 문학으로

그는 민우회와 더불어 ‘강원여성연대’, ‘미군기지 우리 땅 되찾기’, ‘작은 도서관 문화운동’ 등의 대표를 맡으며 한국 사회와 지역을 변화시키기 위한 길을 오랫동안 걸어왔다. “문학이 아니어도 세상은 바꿀 수 있고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디게 바뀌는 세상은 그를 지치게 했다. “문학에 다시 눈과 마음이 갔어요. 내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 나의 사적·공적 고민과 답들이 문학에 있음을 다시 깨달았죠. 지친 영혼이 기댈 수 있고, 고양 시켜주는 건 문학이었어요. 예순을 앞두고 ‘앞으로 어떻게 살까?’ 질문하니, 여전히 문학에 대한 끈을 놓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 버려졌던 내 과거로 돌아가서 노트북 앞에 다시 자세를 고쳐 앉았습니다.”

::: 나의 화두는 ‘사람 간의 관계’

당선작 <바둑 두는 여자>는 삶에 지친 40대 후반의 기연이 글방 학원을 접고 안으로 침잠해 들어가려던 순간, 퇴직한 우 교장이라는 사람의 자서전 대필을 맡게 되며 인간에 대한 따뜻함을 회복하는 이야기이다. 본래는 가족과 단절된 우교장이 자서전을 쓰려는 이야기와 바둑을 공부하고 싶은 나이든 여자가 바둑학원에 가는 이야기, 각기 다른 두 이야기가 있었다. 신춘문예 응모를 위해 두 이야기를 하나로 엮었다. 인물과 상황이 보다 입체성을 얻으며 ‘사람 간의 관계’라는 주제가 더욱 뚜렷해졌다. 기연과 우교장은 앞만 보고 달리느라 따뜻함을 잃고, 타인에게 다가설 줄 모르는, 아니 다가갈 방법을 몰랐다. 잘못된 관계를 바로잡을 용기도 부족하고 회복할 방법도 모르는 한국 사회의 성인들이다. 

“나의 문학적 화두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사람 간의 관계입니다. 1인 가구와 비혼의 증가, 가족단절 등 개인화되고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삶에서 이웃과 공동체에 대한 관심, 무너지는 지구 생태계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해야 해요. 문학은 그를 위한 상징적 힘을 가지고 있어요. 시민운동이 담보해내지 못한 것 즉 일상 속에 스며들어 사람들의 정서를 움직이고 마음과 마음을 연결해주는 힘은 문화예술 특히 문학에 있다고 생각해요. 친구·연인·부부·가족·공동체·시민운동·기업·정치권 등 모든 곳이 다 사람 간의 관계에요. 거기에 인간이 담겨있어요.”

::: 문학이 인간의 따뜻한 양심을 회복시켜야

코로나로 인해 한국 사회가 더욱 빠르게 나노화 되고 있다. 공동체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사람들의 관계도 멀어지고 있다. 진영 논리에 함몰되며 혐오의 정서가 넓게 퍼지고 있다. 그는 문학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역설한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 것인가? 기후 변화 등 지구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등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은 문학에 있습니다. 문학은 인간적 양심을 회복하고 따듯함으로 회귀시켜야 하며 작가들은 그 역할을 부지런히 해야 해요. 

평범한 시민들도 할 수 있어요. 재테크나 처세술이 아닌 ‘책’을 읽어야 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써야 합니다. SNS의 짧은 글도 필요하지만 일기나 편지쓰기 등으로 회귀해서 자신과 이웃을 돌아보고 아이들과 책을 읽으며 소통해야 합니다. 문학은 그 모두와 맥이 닿아 있어요. 문학의 위기를 말하지만 문학의 힘은 여전하고 전자책이든 종이책이든 인류가 생존하는 동안에는 계속 갈 것이고 가야 합니다.”

::: 춘천, 인문학적 소양 갖춰야

작가는 경쟁과 상업화에 물든 비인간적인 도시 환경을 안타까워한다. 몇 해 전 강원대 문화인류학과에 편입해 공부한 것도 그 답을 얻기 위해서였다.

“춘천은 인문학적 소양이 결핍됐어요. 길과 건물 벽에 욕심스럽게 난립한 수많은 간판들을 도대체 이해할 수 없어요. 이런 걸 풀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춘천은 소박한 곳이었어요 하지만 최근에는 도시를 관광 상품으로 포장하는 데 혈안이 된 듯해요. 획일화된 고층아파트, 역사를 묻어버린 레고랜드 등 난개발이 춘천을 파괴하고 있고, 정치와 행정은 시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담보해내지 못하고 경쟁과 과시를 부추기고 있어요. 인문학적 소양을 바탕으로 도시를 가꿔야 합니다. <한 도시 한 책 읽기> 같은 사업에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하고 더 많이 지원해야 해요.”

신문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요량에, 글을 쓰면서 마음을 잡아주고 갈피를 잡는 데 도움을 준 책들을 물었다. “사진을 찍듯 군더더기 없는 상황 묘사가 놀라운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 인간의 복잡하고 불완전한 내면과 관계를 탁월하게 묘사한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여성과 자연 그리고 인간에 대한 감동적인 이야기 델리아 오언스의 《가재가 노래하는 곳》, 인간의 본질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며 인간에 대한 쓸쓸한 정서가 깊은 공감을 준 하창수의 《돌아서지 않는 사람들》 등이 생각나네요.” 내친김에 만약 인류가 재난을 피해 어딘가로 이주한다면 꼭 가져가야 할 한 권의 책을 묻자 “불경입니다. 종교를 떠나서 한 인간이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이 집대성되어 큰 가르침과 감동을 줍니다. 불경 안에 문학이 들어있어요”라고 말했다.

인터뷰가 끝날 때 그는 “앞으로도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 인간이 누구인가를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현재 단편과 장편을 같이 구상하고 있어요”라며 계획을 밝혔다. 언젠가 그의 책이 <한 도시 한 책 읽기>를 통해 많은 시민들에게 읽히길 기대한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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