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가 놀이터〉 석사진흥아파트 ‘진흥 공터 한마당’의 의의

지난해 11월 6일 석사진흥아파트 유휴공간에서 열린 ‘진흥 공터 한마당’은 법정문화도시 1년 차 사업에서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다. 

아파트 주민인 이민아 씨와 이웃의 두 여성은 <도시가 놀이터>라는 프로젝트 중 하나로, 아파트 단지의 버려진 공터에서 벼룩시장, 체험프로그램, 진흥놀이한마당 등을 열며 유휴공간의 의미 있는 전환을 도모했다. 일견 ‘도심 아파트 단지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이벤트 아니야?’ 라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시사하는 의미는 크다. 

‘진흥 공터 한마당’은 석사진흥아파트 주민들의 화합의 장이 됐다.

그전에 한 가지, 서울대학교 소비트렌드분석센터의 《트렌드코리아 2022》는 올해 첫 번째 키워드로 ‘나노사회’를 꼽았다. ‘나노사회’란 사회가 공동체적 유대를 이루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조각조각 흩어지는 사회이다. 공동체 문화보다는 개인주의 문화가 더욱 팽배해지고 개개인이 10억 분의 1을 나타내는 극소단위 ‘나노’처럼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통계청의 ‘2020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20년 1인 가구 수는 664만3천354가구로서 전체 가구의 31.7%에 달한다. 2023년경으로 예상한 663만여 가구를 이미 넘어섰다. 1인 가구 증가와 맞물려 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 재택근무, 집콕문화 등이 나노사회를 가속화 시키고 있다.

하지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타인과 관계 맺기를 원한다. 공동체 문화가 급격히 줄어드는 자리에 다양한 취향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 활동이 늘고 있다. 《트렌드코리아 2022》에서도 SNS 해시태그와 커뮤니티를 합성한 취향공동체를 칭하는 ‘태그니티’의 확산을 전망했다. 

하지만 취향으로 뭉친 집단은 반향실 또는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라는 한계를 드러낸다. 반향실은 특수재료로 벽을 만들어서 소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메아리처럼 울리게 만든 방을 뜻한다. 자신의 견해와 비슷한 사람들하고만 소통함에 따라 다른 의견을 접하지 못한 채, 기존의 신념이나 견해에 대한 확신이 더욱 강화되며 취향공동체 밖의 사람은 타자화하는 현상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코로나 이후 사회는 모래알처럼 흩어지고 끼리끼리 관계 맺고 내 편끼리만 공명하는 경향이 짙어질 거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이러한 전망은 취향을 바탕으로 한 커뮤니티 사업이 많은 문화도시 조성사업에 대한 염려로 이어진다. 이웃과 공동체를 강조하는 문화도시 사업이 취향을 넘어 이웃과 연결되고 도시를 변화시킬 수 있을까? 주민 화합의 장이 된 ‘진흥 공터 한마당’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울타리를 넘어서려면 ‘감정의 연대’, ‘공감의 확산’이 필요하다. 이 씨 등은 진정성이 담긴 글로 관리사무소와 입주자 대표회의 허락과 동참을 이끌었다. 서먹하고 교류 없던 주민들이 방치된 공터에 모여 벼룩시장, 체험, 체육대회를 즐겼고 공터 활용방안에 대한 자유로운 공론장도 펼쳐졌다. 우려했던 민원 대신 ‘이런 일이 자주 열리면 좋겠다’, ‘엄마들끼리 어떻게 이런 일을 벌였냐? 다음에는 나도 돕겠다’, ‘모두에게 공통의 추억이 생겼다’ 등 호평이 이어졌다.

일련의 과정에서 공감능력이 크게 작용했다. 공감능력은 ‘나노사회’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꼽힌다. 한 명의 생각에서 시작해 이웃의 두 엄마가 참여하고 주민들에게 ‘왜 이 일이 필요한지’ 이유를 설명하며 경계와 장벽을 허물었고, 주민들이 호응했다. 행사를 통해 공유된 감정은 아파트 공동체에 스며들어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다. 행사는 지역의 한 아파트에서 열렸지만, 주민들이 공감한 문제는 전국의 많은 아파트에도 유효하기에 더 특별하다.

춘천의 문화도시 사업이 나아갈 방향 아닐까? 물론 한 번의 행사만으로 공동체와 도시의 변화가 바로 일어나기는 어렵다. 이 씨는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우리는 그날 이후 그렇게 많은 교류를 또 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세 가정이 종종 서로의 상황을 주고받으며 언젠가 또 협력할 일이 생길 때 각자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어 하는지 예측 가능한 사이로 발전했다”라고 말한다. 최소한 이들은 이웃사촌이 된 것이다. 춘천의 변화는 공동체 나아가 동시대의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심리적 이웃이 늘어갈 때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취향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 활동은 시대적 추세이기 때문에 문화도시 사업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지역을 넘어 동시대의 고민을 담아내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몇 년 후 사업이 마무리됐을 때, 아무런 관심도 없었고 전혀 참여하지 않았던 시민이 ‘춘천이 뭔가 달라졌네’라고 반응하길 바란다면 지나친 기대일까? 만약 동의한다면 취향을 넘어서 시대적 고민(남녀·세대·지역)을 담아내는 판이 좀 더 늘어날 때 듣게 될 것이다. ‘진흥 공터 한마당’처럼 말이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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