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걸2리 이장 김은실

“이장을 하며 마을의 일부분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더 많이 귀 기울이게 된다”는 사람 내음 가득한 ‘꽃골’ 상걸2리 이장님, 김은실을 소개합니다. 

지난해 인기리에 종영한 ‘갯마을 차차차’라는 드라마에 홍반장이 있다면, 꽃이 많이 펴 꽃골로 불렸다던 30여 가구 남짓한 작은 마을, 상걸2리엔 김반장, 김은실 이장이 있다. ‘갯마을 차차차’의 홍반장은 넉살 좋게 마을 사람들 모두를 챙기고, 어려움을 해결해주며 함께 살아간다. 그런 홍반장이 오해받고, 힘든 일을 겪으면 마을 사람들 모두가 나서 위로하고, 응원해주기도 한다. 꼬불꼬불 이어진 국도를 따라가다 나오는 한적한 상걸2리에서 브라운관 밖 홍반장, 김은실 이장을 만났다. 

상걸2리 김은실 이장님, 늘 해맑은 미소로 마을 어르신들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어휴, 뭘 저를 인터뷰한다고, 이 먼 길을 오셨어요. 특별할 것도 없는데...”라며 연신 자신은 정말 하는 게 없다며 수줍은 말투로 환하게 맞이해준 김은실 이장은 택배를 대신 받아주고, 불편한 마을버스 시간대를 항의하고, 어르신들의 서류업무를 도와드리고, 짧은 여행을 같이 다녀드리기도 하는 등 ‘이장’으로만 칭하기엔 너무 많은 일들을 하고 있었다. “어휴, 그냥 일상이에요. 일상. 뭐 대단한 것도 아니고”라는 김은실 이장의 일상을 잠깐이나마 들으며 아직 겨울이지만, 꽃이 가득 폈을 상걸2리를 상상해 볼 수 있었다.

3표 차로 당선돼 시작한 이장, 지난 선거에서는 압도적 지지로 연임까지

Q. 안 물어볼 수가 없어서요, 어떻게 이장이 되셨어요?

“아유~ 제가 한 달을 거절했어요. 여기는 저희 어머님(시댁)이랑 신랑 고향이에요. 어머님은 쭉 사셨고, 신랑은 2006년에 귀향을 했고, 저도 2016년부터 쭉 살고 있고요. 저희 어머님이 어려우셨을 때 동네 어르신들이 많이 챙겨주시기도 하셨고, 그런 게 감사해서 동네를 위해 필요하시다니까 도와야겠다는 생각에 한 달을 거절하다 투표를 통해서 이장을 하게 됐어요.”

Q. 투표요? 찬반투표를 한 건가요? 

“아니요. 경선이요. 예전에는 잘 안 그랬는데, 요즘엔 투표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Q. 30여 가구 남짓한 마을에 경선이라니, 무슨 이슈가 있었나 봐요?

“네, 마을 이장 임기가 2년인데 제가 2019년에도 경선을 했고, 지난해 말에도 경선을 통해 이장이 됐어요. 2019년에 원래 하셨던 분이랑 함께 후보가 됐어요. 전 이장님이 우리 마을에 어떤 사업을 추진하려고 하셨는데, 마을 분들이 많이 반대하셨어요. 그런데 끝까지 고집을 부리시니까 마을 어르신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들어 줄 사람이 필요해, 저한테 말씀하시게 된 거죠. 당시 추진하려던 사업이 마을 어르신들 농법이나, 생산물 수준 하고 좀 안 맞았거든요.”

당시, 30여 가구였고, 가구당 1표를 행사하는 방식으로 투표를 진행했다. 그 투표에서 3표 차로 당선이 됐다. 작은 마을에서 전 이장을 상대로 젊은 여성이 당선됐다. 그만큼 힘든 일도 있었을 것 같았다. 

“마을 어르신들이 그 사업을 반대했던 목소리가 저에게 모아졌던 것 같아요. 나중에서야 얘기하신 거지만 당시에 사업을 찬성한다고 하셨던 분들도, 전 이장이 얘기하니까 동조하신 거라고 말씀들을 해주셨어요. 하지만 어쨌든 이런 내막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덮어두고, ‘이장 자리를 뺏었다. 여자 이장이라 대하기가 어렵다’라는 말씀들을 하시기도 했어요. 그때는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나 싶기도 했죠.(웃음)”

‘작지만,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 투표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자신들의 의견과 반대되는 사업을 펼치려던 것을 투표를 통해 중지시키고, 자신들의 의견을 잘 반영해줄 사람을 뽑은 것이니. 이런 생각을 말씀드리자 너무 거창하다며 손사래를 치셨다. 

임기가 끝난 지난해 마을 어르신들이 너무 잘하고 있다며 계속 연임해줄 것을 부탁했고, 김은실 이장은 이를 거절할 수 없었다. 이장을 하며 마을 어르신들과 깊어진 관계 덕에 그런 부탁을 외면하기가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경선에서 다른 후보를 제치고 33가구, 100% 투표에 22:11로 두 배의 지지를 받으며 임기를 이어가게 됐다.

택배 업무, 여행 가이드, 서류업무, 버스시간 변경 요구 등 꽃골의 작은 ‘주민센터’ 

Q. 이장으로서 무슨 일을 하시나요?

“별거 없어요. 정말 특별한 게 없어요. 그냥 어르신들 말씀 잘 들어드리는 거. 대단한 것도 없는데 이렇게 멀리까지 인터뷰를 다 오셨어요.” 기분 좋아지는 웃음으로 자꾸 별거 없다고 하는 이장님께 인터뷰 도중 전화가 왔다. “예, 제가 받아 놓을게요.” 기회를 놓칠세라, 무슨 전환지 여쭤본 덕분에 김은실 이장이 하고 있는 많은 일들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아~ 택배 대신 받아드린다는 전화에요. 저희 마을에 지난해 3월부터 택배가 들어와요. 그전에는 택배 불가 지역이었어요. 택배를 받으려면 느랏재 터널을 넘어가야 했어요. 고개가 높아 느릿느릿 걸어가야 한다는 느랏재 터널을 지나 각 택배소를 찾아 가든지, 다른 마을 지인에게 대신 받아달라고 해서 찾아오든지 해야 했는데, 지난해부터 시와 ‘지혜의 숲’의 협조로 택배 서비스가 되고 있어요. 아직 집집마다 배달되는 건 아니지만, 저희 집(이장 집)에 물건을 갖다 놓으면 제가 마을 어르신들한테 택배가 왔다고 알려드리는 거죠. 그래서 전보다 편하게 와서 택배 물건을 찾아가시게 됐어요.”

Q. 보니까 무슨 서류도 떼어주시는 거 같은데요?

“아뇨. 무슨 서류를 떼는 건 아니고, 집 옆에 저희 사무실이 있어요. 사무실에 팩스나 이런 사무업무를 보는 시설들을 갖추고 있거든요. 마을 어르신들은 그런 게 없으시기도 하고, 세금을 내거나, 자치기관에 내야 하는 서류를 제출하기 어려워하시는 경우도 많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제가 있으니까 팩스도 보내드리고, 서류 제출하는 것도 도와드리고…. 뭐 그냥 어차피 제 거 하는 김에 좀 도와드리는 거라 그냥 일상이에요.”

겸손하게 말하지만 마을 어르신들이 놓치는 작은 세금까지도 매년 살뜰히 챙겨 도와드리고 있다. 혼자서 마을의 작은 주민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어떨 땐 여행 가이드가 되어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게 어려운 어르신들과 바다를 보러 가기도 한다. 마냥 부드럽기만 해 보이는 김은실 이장은 마을버스와 관련된 얘기를 할 땐 “항의하러 가야죠” 하며 강단 있게 얘기하기도 한다. 노선이 개편되며 마을을 지나가는 버스 시간이 바뀌어 마을 어르신들이 이용하기 불편해졌기 때문이다.

“오전 8시 50분에 시내로 나가는 버스가 있어요. 그리고 시내에서 돌아오는 차가 오후 2시쯤 있었어요. 어르신들이 오전에 시내에 나가서 물리치료도 받으시고, 장도 보시고 오후 2시 버스를 타고 돌아오시면 됐거든요. 근데 이게 개편되면서 시내에서 돌아오는 버스가 오전 11시 50분 아니면 오후 4시 이후에나 있는 거예요. 11시 50분 차를 타고 돌아오자니 물리치료조차 제대로 받으실 시간이 부족하고, 4시 이후 차를 타자니 어디가 있을 데도 마땅찮은 어르신들에겐 너무 시간이 뜨는 거죠. 그래서 이런 문제를 다른 이장님들이랑 함께 개선해달라고 요청하러 가려고요. 마을 분들을 위한 일이니 따질 건 따져야죠.(웃음)” 차분차분 상황을 전하는 김은실 이장의 진심이 전해져 문제가 잘 해결되길 바라는 마음에 “화이팅”이라는 말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김은실 이장은 이런 많은 일들을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마을 어르신들의 따뜻한 지지와 응원, 그리고 숨은 조력자인 함께 사는 신랑을 꼽았다.

“든든한 조력자, 30년간 고마운 애인, 신랑”

Q. 말씀 중간, 중간에 신랑분의 얘기를 하시는데, 사이가 참 좋아 보이세요.  

“아직도 핸드폰에 애인으로 저장이 돼 있어요. 신랑이 2006년에 먼저 귀향하고, 조금만 도와달라는 꼬임에 넘어가 저도 이렇게 자리 잡게 됐죠. 5년 연애 후 결혼해, 25년째 같이 살고 있는데 서로 많이 존중해주는 편이에요. 신랑이 하고자 하는 게 있음 돕고, 제가 이장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신랑이 많이 도와주죠. 겨울철엔 산불 예방을 위해 산을 다녀주기도 하고, 제설이 필요하면 제설도 해주고, ‘힘들고 거친 일이다’ 싶으면 신랑이 많이 도와주는 편이에요. 그냥 늘 서로 고마운 사이에요.” 신랑 얘기에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였다. 더 많은 얘기를 듣고 싶었지만 슬슬 이야기를 마무리 지어야 해 아쉬울 따름이었다. 

“꽃으로 가득한, 조용하고 편안한 마을을 만들고 싶다.”

Q. 이제 또 새로운 임기를 시작하신 거잖아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하실 계획인지.

“저희 마을은 나이 많으신 어르신도 많고, 조용히 살고 싶어 귀촌·귀농하신 분들도 있어요. 그런 마을이니만큼 큰 갈등 없이 조용하고, 편안한 마을이 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갈 예정이에요. 예를 들면, 시에서 마을 경관을 가꿀 수 있도록 꽃을 지원해주는 사업이 있더라고요. 올해는 그 사업을 신청해서 마을을 꽃으로 꾸밀 예정이에요.”

Q. 곧 시장 선거도 있는데 차기 시장한테 바라는 게 있을까요? 

“아주 기본적인 거요. 현재 시장님은 농촌 지역 간담회를 딱 한 번 하셨어요. 최소한 권역별로 마을 이장들과 연 1회 정도는 간담회를 하시면서 실제 주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시정에 반영해줬으면 좋겠어요. 또 팔리지 않는 땅 때문에 기초 생활 수급자 기준이 되지 않아, 실제 수입은 별로 없는 데 지원을 못 받는 분들에 대한 대책도 추가로 마련되면 좋겠고요.” 마을 이장으로서 주민들과 현 실정에 대한 깊은 고민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Q. 마지막으로 좀 뜬금없을 수 있겠지만, 김은실 인생에서 지금은 어느 지점인지, 또 앞으로 어떤 인생을 꿈꾸시나요?

“계속 진행형이긴 하지만 하나하나씩 지금도 만들어가고 있어요. 신랑이랑 늘 하는 얘기가 ‘향후 10년 동안은 만들어가자. 그 이후에는 만든 것들로 누리면서 살자’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이장이든, 지금 하고 있는 잣 공장이든, 농사든 열심히 만들어서 10년 후에는 노년을 함께 즐기며 살고 싶어요. 이장을 하든, 안 하든 마을을 위한 일들은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계속 돕고 싶고요. 이장을 하며 제일 좋은 건 제가 마을의 일원이 된 기분이 든다는 거예요. 이장을 하면서 제가 말도 안 되는 오해를 받고, 속상할 때면 마을 어르신들이 ‘잘하고 있는데 왜 그러냐’며 나서주시기도 하고, 조용히 위로해주시기도 해요. 그럴 때 어르신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힘이 나죠. 그런 어르신들께 전병 과자 들고, 찾아뵈며 이야기 듣고, 도와드리고 하는 게 특별할 거 없는 제 일상이에요.”

인터뷰하는 내내 웃음을 잃지 않고, 힘든 이야기도 밝게 털어내며 “이젠, 괜찮다”하는 모습에 꼬불꼬불 돌아오는 길이 참 따뜻했다. 아마 지금도 마을 이곳, 저곳 과자를 들고 찾아다니며 밝게 어르신들을 만나고 있을 김은실 이장을 응원한다. 

유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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