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혜진 (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 마을지원관)
조혜진 (춘천시마을자치지원센터 마을지원관)

‘진정한 민주주의는 작은 마을에서 실현할 수 있다.’ 미국 민주주의 토대를 만든 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의 말이다. 제퍼슨은 작은 정부와 권력 분산을 통한 자유의 극대화를 목표로 삼고 작은 마을이 민주주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고 봤다. 

풀뿌리 민주주의는 주민자치 실현에서 힘을 갖는다. 춘천은 2016년 근화, 퇴계 등 2개 동에서 주민자치회 시범 실시를 시작으로 올해 현재 16개 읍면동으로 확대 운영하고 있다. 춘천 25개 읍면동 중에 64%가 주민자치회를 구성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춘천시민 중 주민자치를 알고 있는 이들은 사실 많지 않아 보인다. 멀고도 가까운, 가깝고도 먼 우리 주민자치의 갈 길은 아직 멀기만 한 것이 현실이다. 

주민자치는 자치분권으로 이양된 지방정부의 권한을 주민들이 잘 행사하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주민들이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찾아 해결 방법을 결정하고 자치분권을 실질적으로 실현하는 것에 그 의의를 둔다. 춘천에서는 주민자치 활동으로 2019년부터 주민자치회가 구성된 읍면동에서 주민총회를 실시하고, 매년 주민의 의견을 반영한 의제발굴, 주민투표를 통한 의제 결정을 해왔다. 행정적인 탁상공론이 아닌 마을에 실제로 삶의 터전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모여 그들이 사는 곳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법을 찾아 직접 움직인다. 

여기서 주민자치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주민들 간의 소통과 친목이다. 3년간 세 번의 주민총회를 통해 13개 읍면동에서 결정된 의제들은 복지, 환경, 교육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선정됐다. 선정된 의제들은 이듬해 세부계획수립을 거쳐 실행된다. 이러한 주민총회가 ‘그들만의 잔치’라는 시선도 받는다. 주민자치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이들이 대부분 주민자치회를 하고 있거나 공동체 활동을 하고있는 주민들에 국한되어 있어서다.

이러한 고민에서 춘천은 작년 주민총회를 진행하기에 앞서 주민들의 의견을 현장에서 더욱 많이 듣기 위한 방법인 ‘만만(萬滿)한 의제발굴 엽서’를 고안했다. 약 2개월간 읍면동별로 진행했고 젊은 층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온라인 ‘봄의 대화’를 운영해 주민들의 의견을 모았다. 만만한 의제발굴은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나가 엽서를 나눠주고 마을에 대한 의제를 적어 내는 방식으로 진행해 총 11개의 동에서 2천824개의 의제가 발굴되기도 했다. 일상화된 무관심 속에 쉽지 않은 활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 읍면동별 평균 200여 명 이상의 주민들이 참여해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발굴된 의제는 6월 중순부터 7월 중순까지 한 달간 12개 읍면동에서 총 27회의 토론회를 진행했고 총 641명의 주민이 참여해 65개의 의제가 주민총회로 상정됐다. 이후 주민총회는 7~8월에 거쳐 관내 거점지역에서 사전투표를 진행하고 대면총회에서 의제를 최종 선정했다. 12개의 읍면동에서 총 6천603명이 참여해 투표했고 이는 자치회 평균 550명이 참여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인구수 대비 10% 이상의 참여율을 가진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앞으로 참여 방법을 좀 더 다양하게 접근한다면 의제발굴, 의제 결정에 필요한 참여율을 점차 늘려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을 구성원들 개개인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모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주민자치는 어렵고 거창한 것만이 아니라 작고 소소한 일상의 관심 속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자치회가 주민들에게 자치의 동기를 부여하고 주민자치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주민자치는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언가를 바란다면 그것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민자치는 저절로 성장하지 않는다. 시대의 흐름을 타고 날아올랐으나 주민 개개인의 동력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언젠가 주저앉게 될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소통하고 교류하며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하는 것이 앞으로의 주민자치가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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