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은 과학이다

춘천분지. 첫 농사는?

세계고고학에서는 신석기시대를 비어 고든 차일드(Vere Gordon Child)가 제시한 농경과 목축을 통하여 도시가 발생한 시기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일반적인 견해는 중국 선인동(仙人洞)동굴 발굴조사를 통하여 농사짓기는 1만 년 이전으로 소급될 가능성이 주장되기도 하고, 한반도에서도 청원 소로리유적에서 출토된 볍씨가 구석기시대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 견해는 다양한 연구 방법을 통하여 구석기시대 농사짓기를 증명하여야 하지만 설득력있는 자료는 C14 측정 결과뿐이다. 그리고 당시 농사짓기를 증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인동동굴 출토 토기의 용도도 저장보다는 조리 기능에 활용되었다는 주장이 제시되고 있다.

 거미줄처럼 보이는 부분이 구상경작유구 분포 범위이다.

 

춘천은 중도동유적 발굴조사를 통하여 늦어도 청동기시대에 농사짓기가 확인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사실 중도동유적의 청동기시대 농사짓기가 주장되기 전에 춘천 천전리유적 발굴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해당 내용이 제기 되고 있다. 그러나 그 당시 발굴조사 과정에서 청동기시대 경작 면이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몇몇 다른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천전리유적에서는 구상경작유구, 두둘논 등이 확인되었다고 주장되었지만 두둘논은 이후, 필자에 의하여 자연 현상으로 인한 것으로 농사짓기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밝혀진 바 있다. 그리고 구상경작유구는 발굴조사 당시, 물을 가두어 농사를 짓는 수전(水田)으로 추정되기도 하였으나 수전은 기본적으로 물을 가둘 수 없는 모래질의 토양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천전리유적의 경작유구는 청동기시대 농사짓기 연구자들에게 암묵적으로 인정되는 상황에서 춘천 중도동유적에서 확인된 것이다.

중도동유적 구상경작유구-구획밭에 대한 논쟁

중도동유적 구상경작유구는 상층 즉, 시간이 흐른 뒤에 형성된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고인돌, 철기시대 집자리, 고구려 고분 등의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중도 일원에서 조사기관별로 확인되었다.

당시, 발굴조사 진행이 조사기관별로 이루어져 시대별 유구(집자리, 고인돌, 경작유구:밭)를 관찰하여 토론이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각 조사기관별 조사 내용이 간헐적으로 공개가 되면서 구상경작유구라고 주장되는 유구에 대한 논의가 조용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 유구에 대한 첫 논의는 한림대학교 한림고고학연구소에서 주최한 “고고학과 문헌으로 본 춘천문화의 정체성” 세미나에서였다. 그 당시 발표자였던 한신대학교 이형원과 필자의 토론 과정에서 필자의 견해가 공식적으로 제기되었다. 이후, 2016년 세미나 결과는 단행본으로 출간이 되었고 일부 연구자들에 의하여 비공식적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후, 2017년 한국매장문화재협회에서 주최한 “한강유역의 마을과 생업 경제”라는 주제의 학술세미나에서 토론자인 이형원은 ‘구상경작유구’의 성격에 대하여 공식적으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제기하였다. 이에 2019년 중부고고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 정원철은 ‘구상경작유구’ 긍정론을 제안하였다. 당시, 경작지라는 증거로 탄화된 곡물 자료를 제시하였다. 이 실물 자료의 제시는 그동안 아무런 조사 내용을 공개하지 않은 상태에서 논의되던 경작유구에 대한 실질적인 첫 자료 공개였다.

《춘천 중도동유적》 보고서에는?

중도동유적 보고서는 2020년 우여곡절(迂餘曲折) 끝에 최종적으로 발간이 된다. 대부분의 보고서가 조사기관의 조사자들에 의하여 해당 유적에 대한 고찰이 이루어지는 것에 비하여 일부분은 비조사자에 의한 고찰이 짧은 기간에 이루어진다. 특히, 수년간 논의되던 ‘구상경작유구’도 조사자가 아닌 연구자에 의하여 진행된다. 별권으로 인쇄된 Ⅲ. 종합고찰 중에 ‘구상경작유구’를 ‘소구획밭’으로 명명하고 경작유구로서의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특히, 고랑 모양으로 판 구획부를 ‘배수’의 기능으로 보고 농사짓기가 이루어진 부분을 평지처럼 된 부분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중도동유적 발굴보고서를 살펴보면 이 ‘고랑’ 모양의 배수로의 높낮이 차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배수가 진행되었다면 그 증거가 보여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중도동유적 구상경작유구-구획밭 논쟁의 아쉬움

중도동유적 ‘구상경작유구’는 춘천지역 농사짓기에 대한 논쟁을 촉발시킨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규모의 유구가 확인되었지만 농사짓기가 진행된 경작면에 대한 조사 내용과 식물고고학적 검토가 미흡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선사시대 농사짓기의 고고학적 증거는 고고학자만의 영역이 아닌 식물고고학, 토양학, 지형학 등 자연과학자들과의 학제 간 융합연구가 진행되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분이 진행되지 않았다.

필자는 농사짓기가 이루어졌다는 평탄면과 ‘고랑’으로 주장되는 부분은 자연 현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지금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중도 북반부 부분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이 ‘구상경작유구’에 대한 세밀한 조사 결과가 진행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보고서가 간행된 현 상황에서 앞으로 지속적인 연구가 진행되어 춘천지역의 청동기시대 농사짓기 양상이 규명되기를 바란다.

심재연(한림대학교 한림고고학연구소 연구교수)

참고문헌 : Xiaohong Wu, Chi Zhang, Paul Goldberg, David Cohen, Yan Pan, Trina Arpin, Ofer Bar-Yosef, “Early Pottery at 20,000 Years Ago in Xianrendong Cave, China”. Science. 29 Jun 2012, Vol. 336, Issue 6089, pp. 1696~1700. 

David J. Cohen, Ofer Bar-Yosef, Xiaohong Wu, Ilaria Patania, Paul Goldberg, “The emergence of pottery in China: Recent dating of two early pottery cave sites in South China”,  Quaternary International 441, 2017, pp. 36~48.

춘천 중도동유적 연합발굴조사단, 2020, 《춘천 중도동유적》.심재연, 2021, 《춘천 천전리유적의 ‘반구상경작유구’ 재고》, 《고고학》 20-1, 중부고고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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