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홍석 (사단법인 인투컬쳐 상임대표)

3월 대선을 앞두고 여당과 진보정당 후보가 주 4일 근무제를 공약으로 제시하며 ‘놀금’ 논쟁에 불을 붙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주 4.5일 근무제의 단계적 도입을, 정의당 후보는 주 4일제를 2025년부터 전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시간을 줄여 변화된 노동환경을 반영하고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유럽이다. 프랑스는 1998년부터 주 35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국, 스페인, 아이슬란드, 스코틀랜드,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등에서 주 4일제를 시범 운영하거나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에서는 지난해 4월,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이 주 4일 근무제 추진을 공식화하면서 관련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경우, 전체기업의 약 27%가 주 4일 근무제를 시행 중인 것으로 미국 인사관리협회의 2019년 통계는 밝히고 있다. 

우리나라도 최근 들어 민간기업 사이에서 근무시간 단축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2019년 6월, 교육업체 에듀윌이 국내 최초로 주 4일제를 도입한 이래 SK텔레콤, 카카오게임즈, 화장품제조업체 에네스티가 격주 4일제나 주 4.5일제를 시행하고 있다. 그리고 새해 들어서는 휴넷, CJ ENM, 배달의민족 자회사 우아한형제등이 근무시간을 단축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렇다면 유럽과 일본은 왜 노동시간을 단축하려고 할까? 세계경제는 지금 저성장과 실업률의 증가로 최악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은 세계 경제를 더욱 위축시키며 경기불황을 가중시키고 있다. 독일의 경제학자 다니엘 슈텔터는 ‘코로노믹스(Coronomics)’가 향후 세계를 완전히 변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하며 새로운 미래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또한 ‘주 4일 32시간 노동’을 제시한 프랑스 경제학자 피에르 라루튀르와 사회학자 도미니티 메다는 《주 4일 근무시대》에서 세계는 이미 주 4일 근무시대로 진입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4차 산업혁명과 같은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인간의 일자리가 점차 사라지고 성장 둔화와 대량 실업사태가 현실로 다가온 지금, 사람들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모두가 함께 일할 수 있는 해법은 노동시간 단축뿐이라고 주장해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만이 실업률을 낮출 수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뜨거운 논쟁 이슈가 되고 있다. 주 4일 근무제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삶의 다양성과 출산율 제고, 소비 진작과 일자리 창출로 경제에 활력을 일으키고 온실가스 배출억제 효과까지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견해이다. 

이와 달리, 반대 입장에서는 노동자의 임금감소가 불가피하고 생산성이 감소할 뿐만 아니라 상대적 박탈감이 커져 기업경쟁력이 약화되어 오히려 성장이 둔화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이에 대해 우리 국민들 사이에서도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의견과 경제성장과 삶의 질 향상에 필요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이렇듯 노동시간 단축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가까운 시일 안에 해결될 것 같지 않다. 그동안 우리사회는 경제발전과 국민의식 수준이 높아지며 경제적 성취보다 개인행복과 삶의 질이 더 중시되는 탈가치지향 사회로 변모했다. 

이러한 사회 풍조가 맞물리며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는 돈보다는 일과 삶의 균형을 직업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을 정도로 우리가 일하고 살아가는 방식도 변하고 있다. 노동시간 단축은 경제적인 요소와 라이프스타일적 요소 모두를 고려해 판단해야 할 중요한 사회적 화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준 노동시간을 줄이는 문제는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 흐름이 되고 있다. 2004년 수많은 논란 속에 주 5일제가 시행된 지 18년 만에 한국사회는 또 다시 선택과 변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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