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바람이 불었어
 / 마리아 바사르트 / 
양철북 / 2021

 

열다섯 소녀 ‘아나’가 아버지를 찌른 후 보호 센터와 이모네 집을 거치며 ‘삶의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이야기이다. ‘아나’는 보호 센터에서 룸메이트에게 일기 쓰기를 권유받고 일기장에 한 줄 한 줄 자신의 마음을 적어나간다. 검은 덩어리였던 아나의 마음이 밝은 빛을 품어가고 희망으로 차올랐던 삶이 다시 위협을 받기도 하며 아나는 단단하게 자신을 회복해 나간다.

‘아내를 때리고 딸에게 찔리다’라는 신문 기사의 짧은 제목으로 아나의 삶은 요약되지만, 그 이면에는 간추려질 수 없는 아나의 고통과 괴로움이 있다. 삶의 기쁨과 이유도 모른 채 나날이 무력해져 가고 두려움에 시달린다. 아버지의 오랜 구타로 생명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엄마를 보며 무력감에 시달리는 아나가 원하는 것은 자기 방에 ‘문고리’를 다는 거다. 그 작은 고리에라도 기대어 보호받고 싶어 한다…. 안락한 공간이어야 할 집이 가장 공포스러운 공간이 되어버린 잔인한 현실 속에서 아나는 삶의 이유를 찾을 수 없다. 

아버지를 찌르는 끔찍한 일을 저질렀지만, 그로 인한 폭력 가정과의 분리가 아나에게는 기회가 된다. 다시 본연의 생명력을 찾고 자기 존재를 긍정하게 된다. 일기 쓰기를 통해 자신을 직면하고 긍정해가며, 자연 속에서 생의 에너지를 경험하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다시 희망을 갖는다. 그 과정은 순조롭지 않지만 아나는 용기를 내어 자기 삶의 다음 페이지를 넘긴다. 

아나가 자기 삶의 문제를 풀어가는과정에서 우리는 삶의 문제를 다루는 태도를 배울 수 있다. 삶에서 문제가 생기면 빨리 해결하고자 하며,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 그 문제만 해결되면 삶이 순탄해질 것처럼 말이다. 또 문제 해결 능력이 자신의 능력인 것처럼 여겨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는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삶에서 우리가 겪는 문제들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삶의 문제는 늘 어디에나 있으며 ‘나’와는 별개로 문제가 생기고 해결되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사이다’ 서사는 실제 삶에서 흔하지 않다. 우리는 오랜 기간 문제를 살아내며 그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삶의 다양하고 복잡한 면을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특별한 일을 겪은 사람의 예외적인 이야기라고 할 수 없다. 자기 존재의 생명력을 부정당하는 고통 속에서 자신을 회복해가는 이야기이며 삶의 변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매일 우리는 자신을 의심하도록 만드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나를 억압함으로써 얻어지는 것들에 가치를 두기도 하며 내 안에 들어있는 감정들을 살펴본 지도 오래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 책은 양철북 청소년 문학 ‘더 가까이 더 깊숙이 더 멀리’ 시리즈의 첫 번째 도서이다. 

“자, 글을 써 봐.” 내가 눈을 뜨자마자 마리사가 이렇게 말하면서 공책과 볼펜을 내 침대에 올려놓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김순남(봄내중학교 교사)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