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동식 봄바람 운영위원

‘일독일행’ 과정 중 미리내 성지를 방문한 홍동식 소방관   사진 제공=홍동식

‘First In, Last Out’, 화재와 재난현장에 가장 먼저 들어가서 가장 마지막에 나오는 소방관의 숭고한 정신이 담긴 말이다. 그들은 이 말을 늘 가슴에 새기며 각종 재난 및 구급현장에 어김없이 나타나 국민의 생명과 안전, 재산을 지킨다. 

홍동식(45·퇴계동) 소방관도 그렇다. 그런데 그는 재난현장뿐만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문화현장에도 나타나 새로운 문화 바람을 불어넣고 있어 눈길을 끈다.

그를 설명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봉사’이다. 춘천 토박이인 그는 한림대학교 재학시절 봉사활동 동아리 ‘다붓’에서 활동하며 봉사하는 삶에 눈을 떴다. 졸업 후에는 요양보호사를 첫 직업으로 삼아 지역의 복지기관에서 근무했다.

“요양보호사로 일하다 더 많은 이들에게 도움 주는 일을 하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소방관이 되기로 했습니다. 그 무렵 춘천의 한 외곽도로에서 일어난 사고현장을 목격했는데 출동한 119구급대 소방관들에게 크게 감동했어요. 차량이 장애인의 전동휠체어를 들이받은 사고였는데, 장애인을 대하는 친절하고 섬세한 태도가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신을 얻었죠.”

바람대로 소방관이 되어 지난 2007년 첫 근무지 태백소방서에 발령을 받았다. 이후 강원소방본부 상황실, 춘천소방서, 강원소방본부 특수구조단 수난구조대를 거쳐 현재 화천소방서 119안전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신북읍 천전리 산사태, 의암호 참사 등 지역의 각종 재난 및 구급현장에서 헌신해 왔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접한 한 권의 책이 그를 문화 활동으로 이끌었다. “책읽기와 담을 쌓고 살다가 2014년, 시대를 진단하고 독서의 가치를 설파하며 독서를 통해 변화를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독서혁명》을 읽고 큰 자극을 받았어요. 그때부터 책을 가까이했어요. 혼자 읽다 보니 함께 읽고 토론도 하고 싶어져서 아르숲 생활문화센터의 독서모임에 참여했죠.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제로》시리즈, 《사피엔스》, 《코스모스》 등을 읽고 대화하며 갈증을 채웠어요. 너무 신나고 재미있어서 이렇게 좋은 걸 왜 그리 늦게 시작했을까 후회되더라고요?”(웃음)

참여자에서 기획자로 

두 번째 키워드는 문화를 통한 ‘삶의 전환’이다. 독서 체력이 길러지자 손수 프로그램 기획에 나섰다. 마침 그 무렵 춘천은 법정문화도시에 선정되어 시민이 주도하는 다양한 문화사업이 시작됐다. “지난해 직접 기획한 ‘일독일행’이라는 프로그램을 문화도시 사업 ‘일당백프로젝트’에서 운영했어요. 책을 꼼꼼하게 읽으며 인물에 대해 제대로 탐구하자는 취지였어요. 정약용 관련 서적 3~5권을 읽고 유배지인 전남 강진을 여행했습니다. 밀도 높은 탐방과 토론, 에세이 쓰기 등을 통해 참가자 모두 인간 정약용과 친밀감을 쌓았습니다. 또 ‘도시가 살롱’의 ‘쓸:데 있는 쓸:얘기들’에도 참여해서 글쓰기를 배웠고, ‘시그널페스티벌’에서는 ‘책 편 김에 완독’을 직접 기획해서 책 한 권 읽기 어려운 직장인들을 서로 격려하며 토론과 글 쓰는 즐거움을 나눴습니다.”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얻은 자신감은 춘천의 문화예술과 문화도시 사업의 성공에 대한 희망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문화도시 조성에 참여하는 시민협의체 ‘봄바람’을 설계하는 ‘봄바람추진단’에 참여했고 최근에는 봄바람 운영위원에 선출됐다. “지난해 초부터 수많은 회의와 토론 워크숍 등을 진행하며 봄바람을 설계했어요. 문화도시 성패는 시민의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가 관건이잖아요? 그것이 이뤄지는 플랫폼이니만큼 정말 많은 공을 들였어요. 설계가 완성된 후 내친김에 운영위원에 도전해서 의견수집분과를 맡았습니다. 다들 의욕이 커요. 많은 시민의 바람이 문화도시 사업과 시책에 담기도록 노력할 겁니다.”

그의 존재가 특별한 이유는, 법정문화도시 춘천이 구현하려는 문화시민의 모습에 현재 가장 가까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문화로 삶의 전환을 이루고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다양한 문화활동을 기획하고 시민에게 다가가는 문화이웃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봄바람’ 운영위원 중에서 일반 시민과 가장 가까운 존재이기도 하다. 

홍 씨는 변화된 자신의 모습이 놀랍다고 말한다. “여러 사람을 만나거나 앞에 나서 말하는 게 두려웠는데 문화활동을 하며 좋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아서 자존감도 향상됐고 편하게 말할 수 있게 됐어요. 이제는 만남을 즐깁니다. 하지만 말솜씨는 여전히 꽝이에요.”(웃음) 이어서 “돈벌이도 안 되는 일을 왜 하냐고요? 다들 잘 모르겠지만 소방관들은 시간이 나면 운동 말고도 밴드·악기연주 등 문화활동을 꽤 많이 해요. 업무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거든요. 소방관들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률이 일반인에 비해 10배 이상 높고, 수면장애를 겪는 분들도 많습니다. 저는 그걸 혼자 풀기보다는 낯선 이들과 함께하고 싶었어요. 사고, 사망 등 어두운 대화를 벗어나 문화현장에서 오가는 긍정적인 이야기에서 힘을 얻습니다. 그러니까 이득이 더 커요.”(웃음)

문화도시, 시민 참여 이끌고파

의욕이 큰 만큼 아쉬움도 없지 않다. “문화도시 사업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고 있어요. 다만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좀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점점 나아지고 있지만 늘 참여하는 익숙한 얼굴들만 보이거나 토박이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해서 참 아쉬워요. 수도권 등 타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 특히 젊은 이주민들은 관심도 많고 참여를 잘하는데, 춘천의 토박이들은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기 주저하고 고향의 문화 인프라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 것 같아요. ‘봄바람’이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우선 나부터 새로움에 유연한 공무원이 될 겁니다. 시민은 물론이고 지역의 많은 공무원들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문화예술의 새로운 흐름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도시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럼 난개발도 없어지고 자연도 더 잘 지켜지겠죠?”

올해도 역시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소방관 업무이다. 다음으로는 “봄바람 운영위원으로서 시민의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끌어내고 싶어요. 이왕이면 소방관 동료들도 함께하면 좋겠죠. 그리고 독서를 기반으로 한 재미있는 커뮤니티 활동도 기획할 겁니다. 그리고 의암호와 소양호에 떠다니는 쓰레기가 정말 많은데, 동료와 시민들과 함께 ‘호수 쓰레기 제거 활동’도 기획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종일 기자

저작권자 © 《춘천사람들》 - 춘천시민의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