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현서(소설가)

많은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못마땅해하듯, 며느리도 시어머니가 못마땅하긴 마찬가지다. 나의 올케언니도 그랬다. 그런 언니가 엄마를 단 한 번 칭찬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한 번도 욕을 안 하더라. 우리 엄마도 욕 안 했는데, 그래도 우리 엄마는 ‘이노무 기집애’ 이런 말은 가끔 했거든. 근데 어머니는 딸들한테 그런 말도 한 번도 안 하더라.”

엄마가 욕 안 하는 게 무슨 칭찬거리일까 싶겠지만, 박완서 소설가의 <엄마의 말뚝>에 나오는 현저동 달동네처럼 가난한 동네에선 그저 살아내기 위해 억척스러워진 사람들이 싸움과 욕지거리가 끊이지 않으니, 그런 옆집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욕을 안 한다는 게 칭찬받을 일이 될 수도 있다. 

엄마가 그렇다 보니, 집 안에서 욕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언니도 엄마를 그대로 닮아 고운 말만 사용한다. 그런 분위기에 익숙한 조카들은 나의 거침없는 말에 흠칫흠칫 놀라기도 한다. 내가 욕을 곧잘 하는 건 가정교육을 잘못 받은 게 아니라는 변명을 하고 있는 거다. 

물론 말은 그 사람의 품격을 좌우한다. 가능한 고운 말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그러나 정말 화가 났을 때, ‘화가 난다’고 하기보다 ‘빡친다’, ‘열받는다’ 혹은 ‘뚜껑 열린다’라고 해야, 화가 난 상황과 감정을 더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 아이들은 ‘킹 받는다.’고 한다지. 터무니없는 것들도 있지만, 요즘 아이들의 신조어 창조 능력에 감탄스러울 때가 더 많다. 

정말 화가 나는 상황에서, ‘그러시면 저 화가 나요. 저한테 왜 그러세요’라고 하는 건 정상일까? 

때로는 욕이 상황과 감정을 어감에 모두 살실어 담을 수 있는 더 정확한 표현일 때도 있다. 그게 나의 언어관이고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필요할 땐 욕을 할 예정이다. 오히려 욕을 한다는 건, 화가 났다는 거고, 화가 난다는 건, 대상에 대한 애정이 있거나, 문제 상황을 해결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니 말이다. 

산다는 게 점점 더 각박해지고,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염병 사태까지 더해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점잖은 척 뒷짐 지고 가식적인 말들을 쏟아내는 사람보다, 자식들 먹여 살려보겠노라 억척스럽게 살았던 현저동의 엄마들이 유난히 그리운 계절이다.

심현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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