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살롱] 와인 이야기 9
[문화 살롱] 와인 이야기 9
  • 홍성표(전 한국와인협회 고문)
  • 승인 2022.03.07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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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은 관련된 금언이나 격언, 속담 등이 유난히 많다. 언젠가 와인 마니아들 몇이 모여 불콰해질 무렵이었다. 각자가 간직하고 있는 금언 한 가지씩을 소개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가슴에 닿는 말 하나를 선정하기로 했다. 그날 나온 몇 가지를 나열해 본다.

‘항상 와인따개를 가지고 다녀라. 그러면 와인은 스스로 나타날 것이다’, ‘한 병의 와인에는 세상의 어떤 책보다 더 많은 철학이 담겨 있다’, ‘와인은 신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행복한 것을 좋아한다는 한결같은 증거다’, ‘와인은 잔 속에 든 시다’, ‘와인을 마시면 이성이 떠나고 영혼이 나온다’, ‘당신은 행복을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와인은 살 수 있다. 그 둘은 같은 종류다’

출처=프리픽

그 밖에도 여러 가지가 나왔지만 가장 많은 표를 얻은 것은 이것이었다. ‘와인은 물속에 숨어있는 불이다’ 그 불 속에 철학과 문학, 신과 행복, 이성과 감성, 거짓과 진실 등이 오롯이 담겨 있다는 것에 모두들 동의한 결과였다. 

이렇게 시작한 자리가 어느덧 무르익어 갈 즈음, 뜬금없이 정치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있었다. 다들 알다시피 보통 이런 자리에서 정치나 종교에 관한 화제는 대부분 끝이 개운하질 않다. 흉허물없는 사이의 취기가 원인이었을 것이다. 약간의 횡설수설이 섞여 있었지만 재미있는 주장이어서 그 친구의 어투를 빌어 소개해 보면 이렇다. 

“요즘 국회가 열리고 있지? 옳으네 그르네, 맞네 틀리네, 진짜네 가짜네 등등으로 국민들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는 자들이 많잖아. 시인 김지하가 이미 50년 전에 그들을 싸잡아 ‘국개의원’이라고 했다가 끌려간 지 얼마나 지났는데 지금도 똑같단 말이야. 이럴 때 좋은 방법이 있지. 회기 중에는 무조건 모두 와인 한 병씩을 마시고 회의에 들어야 하는 걸 의무화 시키면 된다고. 이건 이미 로마 시대에 타키루스라는 형님이 주장한 거야. 와인을 마실 때만큼은 누구라도 거짓말을 할 수 없다에 나도 한 표 던진다. 요즘 서로 대통령 하겠다고 티비에서 토론들 하잖아. 그 사람들도 한 병씩 마신 후에 해야 한다고.” 이렇게 끝을 맺은 그의 주장은 아슬아슬하게 진영논리를 비켜 가며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 

인간의 삶이 무엇이라거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 방법을 정의하기는 불가능하다. 더구나 누구라도 자의에 의해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 아닌가. 이걸 확대해석해 보면 삶에 대한 책임이 내게만 있지 않다는 발상도 가능하다. 한 잔의 와인 속에 이런 것들에 대한 해답이 있다고 주장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맑은 가을날, 무심히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이 전하는 소리와 눈 덮인 땅속에 봄을 기다리고 있는 풀씨들이 두런거리는 소리를, 한 잔의 와인과 더불어 귀 기울여 볼 수는 있다고 생각된다. 

신은 사람이 울 수 있도록 눈물을 만들었고 웃을 수 있도록 와인을 만들었다는 말이 있다. 신은 물을 만들었고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는 말도 있다. 내가 인간이어서 즐길 수 있는 범상치 않은 한잔의 음료가 와인이다. 겨울철, 따뜻한 벽난로 앞에 앉아 사랑하는 친구와 나누는 한잔의 와인에 마지막 찬사를 더해본다. 

“와인과 친구는 가장 위대한 조합”

홍성표(전 한국와인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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