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다비드 칼리 / 그림 세르주 블로크
 / 문학동네 

 

‘설마 전쟁이 일어나겠어’ 했지만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그리 먼 나라의 이야기도 아니다. 누군가는 선제공격이라 하고, 누군가는 군사적 충돌이라 하지만 어쨌든 물리적 싸움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에게 싸우지 말라고 하루에도 여러 번 얘기하는데, 뉴스에 나오는 러시아 탱크와 미사일 영상을 보며 아이들이 전쟁이 뭐냐고 묻는다. 이를 어쩐다.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 있을 때 종종 그림책에 도움을 받는다. 짧은 그림책 안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데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설명하기도 쉽다. 이번에도 그림책을 찾아본다. 좋아하는 작가 다비드 칼리의 《적》이 눈에 띈다.

‘사막에 두 개의 참호. 그리고 참호 안에 숨은 병사. 그들은 적이다.’ 라는 문장과 입체적이면서도 단순한 참호 그림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적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땅을 파서 만드는 시설인 ‘참호’. 작가는 ‘참호’를 종이에 구멍을 뚫어 표현했다. 책 소개 글에서 ‘참호’로 표현된 이 구멍은 부대에서 낙오된 병사가 처한 현실적 상황이며, 이데올로기의 영향 아래 있는 의식의 제한적 상황을 의미한다는 설명을 봤다. 

오래전 전쟁이 시작되던 날, 병사는 총 한 자루와 전투 지침서를 받았다. 지침서에는 적에 관한 모든 것이 나와 있었는데, 적은 동정심이 없고 여자와 어린아이를 이유 없이 죽이는 존재로서 인간이 아니며, 우리를 지키기 위해 몰아내야 하는 존재라고 명시되어 있다. 병사는 지침서의 설명대로 적과 싸워왔다. 병사는 길어지는 전쟁에 지쳐 ‘적’을 없애야 이 전쟁이 끝남을 알고, 용기 내어 참호를 벗어났을 때, 그는 ‘적’의 가족사진과 적의 전투 지침서에 적으로 규정되어있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좁은 참호 속에서 굶주림과 싸우고, 외로움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는 ‘적’은 자신과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병사는 그 구멍을 벗어나 비로소 자신의 상황과 전쟁의 허구를 직시한다. 그리고 나서 전쟁의 종식과 평화의 가능성이 열리며, 총이 아닌 종이와 펜으로 전쟁을 끝낼 수 있음을 암시하며 이야기는 끝난다. 이토록 깊은 생각을 담은 그림책이라니. 온 가족이 모여 그림책 한 권으로 전쟁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지 않을까. 나도 혹시 어떤 구멍 안에서 세상을 편협한 시각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닐까 괜히 한번 뒤돌아 본다.

전부용(담작은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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