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림극장이 생긴 후 중앙시장 옆 고갯길은 육림고개라고 이름이 바뀌었다. 이 고개가 있는 동네는 죽림동이다. 죽림동의 지명은 봉의산의 지명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봉의산은 봉황새가 날아오르는 모양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죽림동은 봉의산 앞쪽에 형성된 마을인데 봉황새는 대나무 열매를 먹고 산다 하여 대숲이 있어야 한다는 뜻에서 해방 이후 이 마을의 지명을 죽림(竹林)동으로 개칭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죽림동 옆에 생긴 극장 이름을 육림극장이라고 붙였다는 것이다. 왜 육림이라고 붙였는지는 유래를 찾기 어렵다. 그런데 육림(育林)은 ‘산림을 가꾸어 키우는 일’이란 뜻이라 ‘대나무가 있는 동네’라는 죽림동의 지명과 일부 맞닿아있다. 육림극장 창업주는 산림을 가꾸어 키우듯 영화를 통해 젊음의 열정과 의기를 북돋고 싶었던 것일까? 배경이야 알 수 없지만 ‘육림’이란 명칭은 산림을 가꾸어 키우듯 번져 지금까지도 육림강냉이, 육림객잔 등 다양한 업종에서 상호로 차용되고 있다. 

육림강냉이는 육림고개에서 운반업을 하던 황선철 씨의 부친이 1970년대에 처음 시작했다. 지금도 강냉이 가게에 붙어있는 살림집에서 살고 있는 황선철 씨는 1980년대 말 육림강냉이를 물려받았다. 육림강냉이에서는 종일 강냉이 튀기는 소리가 펑펑 터진다. 재래방식으로 튀겨진 강냉이는 춘천 내외의 소매점으로 납품되고 있다. 육림강냉이처럼 오래된 가게들은 아직도 육림고개에 드문드문 들어 앉아있다. 1977년에 문을 연 올챙이국수집은 육림고개의 명물이 되었다. 뚝뚝 끊어지는 올챙이 국수의 순수한 맛과 싼 가격은 35년째 한자리에서 행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육림고개 아래 중앙시장 방면에서 ‘미용실’이라는 수더분한 입간판을 세운 경상도미용실은 49년이나 됐다. 경북 울진에서 스물한 살에 춘천에 와 육림고개에 미용실을 연 베테랑 사장님은 예약만 하면 옛날 불고데기로 일주일 동안 풀리지 않는 ‘고데’를 해주신다. 경상도 미용실 대각선에는 ‘주옥연 30년 전통 메밀전집’이 있다. 본래 더 아래쪽 중앙시장 입구에서 장사하다 건물이 헐리면서 지금의 가게로 옮겼다. 원체 유명한 맛집이었지만 KBS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에 출연하면서 전국에 소문이 났다. 메밀전병, 메밀전, 빈대떡 등을 파는데 만드는 족족 팔려나가 오후 5시 전에는 가야 한다. 

육림고개에는 오래된 비법을 지닌 가게들이 터줏대감처럼 고갯길을 지키고 있고, 그 사이로 이색적인 감성 가게가 줄줄이 열려있다. 2015년부터 춘천시는 막걸리 골목과 젊은이의 거리를 만들려는 시도를 해왔다. ‘주지육림’과 같은 청년축제를 열어 젊은이가 즐기고 걷는 공간을 만들어왔다. 2017년부터는 청년몰 조성사업을 해왔다. 가벼운 중식으로 직장인들의 발길을 끄는 육림객잔도 청년몰 사업으로 육림고개에 발을 들였다. 수제 과일청과 커피를 파는 플로티, 수제과자와 케이크를 파는 구스타프케이크. 와플로 이름난 운교동 와플가게 등은 청년몰의 명물이다. 퓨전 요리로 인기를 끌고 있는 수플레, 아가사식당, 철든식탁은 육림고개 옆으로 난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서 가게를 찾아내야 하는 독특한 골목의 경험을 안겨준다. 달고나 잡화점, 나의 향수, 프로이데, 러브온 등 핸드메이드 공방은 럭셔리는 아니라도 어쩐지 고급스러운 개성미를 뿜어낸다. 

전설의 디바 김추자는 육림고개 바로 옆 약사명동에서 태어나 춘천여고를 나왔다. 개성 있는 스타일과 넘치는 끼 덕에 고등학교 때도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아마도 김추자가 거닐었을 이 거리에는 아직도 전설 같은 맛이 살아있고, 젊은 시절 김추자만큼의 청춘 열정이 들끓고 있다. 

김효화(춘천원도심 상권르네상스 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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