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타스 지 안드라지(Jonathas de Andre)의 <물고기>(O Peixe)는 브라질 북동쪽 연안 마을 어부들의 의식을 다룬 영상작품이다. 원주민 어부는 물고기를 잡은 직후, 죽음을 앞둔 사랑하는 이를 대하는 것처럼 비통한 표정으로 숨이 가빠 펄떡이는 물고기를 가슴팍에 꼭 안고 쓰다듬는다. 그 정성스런 애도의 광경은 오늘날의 인간과 동식물, 자연과의 관계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한다. 

3월 6일부터 16일까지 개나리미술관에서 진행되었던 《room-은둔과 안온》展에서 송신규 작가는 대만 레지던시에서 발견한 원주민의 숲을 전시장에 재현하였다. 외부와 단절된 ‘흑림’ 속에 박제된 동물과 곳곳에 그려진 현대적인 풍경에 대한 드로잉은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문명의 상처들을 상징하고 있었다. 작가는 관객들에게 코로나19 이후의 풍경을 그려 벽면 위에 붙여보라고 주문하였다. 관객들의 방문이 늘어갈수록 점차 작가의 검은 숲은 다양한 드로잉으로 채워져 갔다. 특히 사람들은 작가가 오랜 기간 수집하여 설치해놓은 동물박제들의 모습에서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진 죽은 동물들이 풍기는 아우라는 불편함과 동시에 공포감마저 들곤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유독 그곳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느 날 전시장을 방문한 한 아이는 모든 박제동물에 이름을 붙여주었다. ‘짹짹이’, ‘똑딱이’, ‘꾀꼬리’, ‘하늘이’, ‘조류’, ‘천둥이’….

놀랍게도 박제동물에 이름이 붙여진 후, 그전과는 달리 그들이 마치 영혼이 있는 살아있는 존재처럼 친숙하게 느껴졌다. 아이가 적어놓은 박제동물의 이름들을 바라보며 나는 <물고기>의 원주민을 떠올렸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모든 존재하는 것에는 인간과 같은 종류의 영혼이 있다고 믿었다. 그들에게는 동식물, 산 자와 죽은 자, 해와 달, 신, 사물 등 모든 것들에 영혼이 깃들어 있으며 어떤 위계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인간이 다른 종을 당연하게 지배하고 파괴할 권리 같은 것은 없었다. 이름을 지어 주었던 아이의 순수한 눈에 죽은 동물들은 인간과 다르지 않은 영혼을 지닌 존재였을 것이다.

인간은 1만1천700년 동안 지속되어 오던 홀로세를 종결시키고,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Anthropocene)를 맞게 된다. 인류에 의해 다른 종과 지구의 환경이 파괴되고 결국 스스로의 종말까지 가져오게 하는 인류세의 시대에, 죽어가는 물고기를 안아주는 브라질 원주민과 죽은 동물에 생명을 불어넣은 아이의 모습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인간’이라는 포괄적 개념으로 바라보고 인류 역시 다른 종들의 대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태도야말로 이 시대(인류세)를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현경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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