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욱(작가, 춘천문인협회 회원)

 2019년 3월 29일, 김유정 문학촌은 ‘김유정 추모제’를 맞아 전국에서 찾아온 손님들로 넘쳐났다. 인파 속에서 누군가가 내게 소리쳤다.

“이병욱 씨. 최돈선 씨가 찾고 있어.”

무슨 일인가 싶어 서둘러 갔더니 최돈선 시인이 특유의 웃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도행 소설가 알지? 자네를 만나보고 싶다고 기다리고 있어.”

“네에?”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만나본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도행 선배는 벤치에 앉아 있다가 부랴부랴 찾아온 내게 악수를 청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상춘한 김에 ‘봉의산 가는 길’ 카페에 들렀다가 자네 책을 한 권 샀지.” 

​그러면서 《K의 고개》를 들어보였다. 그 순간의 감격이라니. ‘책을 내도 한 권 팔기 힘들다’는 시대에 내 책을 사 준 것이다. 

이도행 작가는 수원에 집이 있지만 수시로 춘천에 오는 분이었다. 서울에 올라감을 나타내는 상경(上京)이란 말을 활용해 ‘상춘’이라 하여 춘천에 오는 일을 각별히 표현하는 이 선배. 

그의 춘천 사랑은 근년에 낸 두 권의 작품집 제목이 《봄내 춘천, 옛사랑》, 《봄내 춘천, 그리움》’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능히 짐작되지 않는가. 나는 이 선배한테서 선물로 받은 두 작품집을 이틀 걸려 통독하고서 그 감상문을 길게 써 보내기도 했다. 여러 작품 중 ‘무채도’라는 작품이 압권이었다. 그런 뛰어난 작품이 왜 문단에서 제 대접을 못 받는지 안타까웠다. 나중에 이 선배를 서울에서 만났을 때 물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선배님의 작품 중 ‘무채도’는 어디 내놓아도 손색없거든요. 동기인 한수산 씨의 ‘부초’나, 이외수 씨의 ‘꿈꾸는 식물’과 견줘도 결코 못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빛을 보지 못했습니까?”

이 선배가 착잡한 표정으로 답했다.

“운이 없는 게지….”

전철 좌석에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춘천의 ‘김유정 문인비’ 얘기에 이르렀는데 이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

“그 비(碑)가, 내가 잘 알던 선배님이 세운 비이거든.”

그 말에 놀란 내가 대꾸했다.

“그 비는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세웠는데?”

“뭐라고? 그럼 자네 선친 함자가?”

내 입에서 선친 이름이 나오자 이 선배가 놀라서 내 손을 쥐고는 더 이상 말을 못 했다. ‘절그덕 절그덕’ 전철 가는 소리만 존재했다. 이 선배가 이윽고 감회에 젖어 말했다.

“자네가 그 선배님 아들이었다니!… 나를 얼마나 귀여워하고 대견해 하셨는지 몰라. 막걸리 집에서 많은 얘기를 하시곤 했지. 당시 춘천의 몇 안 되는 낭만파 예술인이셨다고. … 1969년에 내가 군대 갔다가 제대하면서 춘천에 돌아왔지만, 집안이 그사이에 서울로 이사 간 바람에 따라가느라고 미처 못 뵙고 헤어진 건데… 그 후 세월이 흘러 선배님이 돌아가셨다는 소문만 듣게 돼… 유족이라도 만났으면 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 나중에 자세한 얘기를 듣겠네.”

전철에서 내려 지상으로 나왔다. 따가운 햇살이 이 선배와 나를 맞았다. 재경춘고 동창회 사무실을 찾아 앞에서 걸어가는 이 선배를 뒤따르면서 나는 이런 생각에 잠겼다. ‘소설(픽션)이 현실을 못 따라가는구나. 소설은 현실을 가공해서 나오는 거라고 말들 하는데… 이렇게 현실이 소설을 압도할 줄이야.’ 


이도행 

소설가 중단편소설집 ‘봄내春川옛사랑’, ‘봄내春川그리움’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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