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태(시인)

계산속으로는

하루에 하루를 더하면 이틀이 맞다 맞지만

두레박에서 부엌까지

여름에서 다시 여름까지

하늘을 이고

물동이가 오간 거리는 별들이나 읽을 수 있던 시간

할머니 적 얘기다

우물 안 개구리가 구름 위로 팔짝 뛰어오르기도 하고

버드나무 화살촉 하나가 그 어두운 구멍을 향해

잘못 쏘아지기도 하고

넘칠 일 없는 함박눈이 둥근 적요를 메워보려고

무리하게 겨울을 온통 겨울로 안간힘 쓸 때도

무릎 한 번 출렁이지 않고 그냥 버렸을 거다

할머니 돌아가신 지 삼십 년

뒤란 장독대를 반짝여주던 북극성을 묻어버리고

버드나무 밑동을 잘라

마지막 아궁이에 불을 지피던 저녁

남몰래 지워진 길이 하나 있었을 거다

아무도 만져주지 않았던 시간이 저 홀로

먼 길을 가고 있었을 거다

눈물 흘러넘치면서

먼 산 무덤 속으로 그 하루를

무쇠솥에 펄펄 물 끓였을 거다

이건 다 할머니 적 얘기

돌아오기도 전에

일찍 집을 떠났던 아버지는 아주 멀리서

너무 늦게야 할머니의 이름을 불렀다

이를테면, 내가 어머니를 우물에 빠뜨리고 나서야

물동이가 비어 있었음을 알아챘듯이

 최준 시집 《칸트의 산책길》 황금알,2021 중에서

 

우물로 이어지는 가계가 있다. 보통은 여인들이 그 길을 이어온다. 할머니에서 어머니에게로 다시 딸에게로 이어지는 물의 길 말이다. 그 우물이 할아버지를 낳았을 것이고 아버지를 낳았고 나를 낳았다는 건 자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비난수 하던 장독대 위에서 할머니나 북두성, 삼신의 보살핌을 받았던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 우물을 오래 들여다보던 하늘이, 물의 가계가 사라졌다. 고난과 곤란의 길이었기에 떠나고 싶었을 게다. 우물 속을 들여다보던 버드나무는 할아버지가 심었을지 모른다. 다 떠나고 남겨진 우물과 버드나무는 이제 생명을 다하고 먼 산 위로 하늘로 올라갔다. 뒤늦게야 자신이 텅 비었다는 걸 알게 되는 게 인생이다. 잃어버려야 하지 말 것을 잃어버리고 사는 우리의 모습을 잊혀가는 민담처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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