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성 (전 정의당 강원도당 부위원장)

대학 시절 노숙인 인권활동을 했었다. 믹스커피를 한 통 준비하고 매주 목요일 저녁 도심으로 나가 노숙 중에 계신 분들을 뵈었다. 커피 한잔 드실래요? 하며 인사를 건네고, 응해주시면 정중히 말을 건넸다. 주로 필요한 옷이나 일자리, 임시주거지를 알아봐 드렸다. 타인 또는 공공으로부터 당했던 인권침해를 듣고 대응하기도 했다.

매주 같은 때 같은 장소에서 만남을 갖다 보니 자연스레 노숙 중에 계신 분들과 관계를 이어가게 되었다.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고 결국 어떻게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지난날의 생활과 현재의 고민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서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어렸을 때부터 늘 가난하게 살았던 분, IMF 때 직장을 잃고 거리를 전전하다 건강마저 잃은 분, 믿었던 이들에게 큰 사기를 당한 분, 사업장이 파산하면서 가정이 깨어진 분 등 많은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진 사람만 승리하는 이기적인 자본주의사회에서는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이들도 거리에 내몰릴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활동하는 내내, 삭막한 이 사회와 사람들에게 당할 만큼 당해버린 분들에게 또다시 자본주의사회에 적응하기를 권유하는 것만 같아 송구스러웠다.

한 시민이 기억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동료들과 함께 커피 통을 챙겨 서울 도심역사로 나섰을 때, 한 분이 우리를 보면서 조금씩 다가왔다. 우리의 활동에 관심이 있으신 것 같아 감사한 마음에 커피를 한잔 건넸다. 그런데 그분은 깜짝 놀라면서 불편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가 자기를 노숙인으로 알아보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순간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리가 자신에게 시혜와 동정을 보내는 것 같아서 불쾌했던 걸까? 누군가를 불쌍하게 생각하고 도와주는 ‘착한 나’라는 위치가 위협을 받아서 불안했던 걸까? 그렇다면 저분은 노숙 중에 계신 분을 자신과 동등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시혜와 동정을 받아야만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걸까? 그도 아니면 노숙인에게 드리는 커피가 더럽다고 생각했던 걸까? 따랐던 커피 한잔은 결국 내 손을 떠나지 못했다. 

거리에서 활동하면서 교회들이 선교라는 이름으로 타인에게, 특히 사회적 지위가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례하게 대하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밥을 조건으로 노숙인에게 예배를 강요하고, 성탄절이 되면 똑같은 조끼를 입고 우르르 몰려나와 노숙인의 박스를 동의 없이 걷어 올리고, 여러분은 늘 배고픈 사람이니 당연히 이게 먹고 싶을 거라는 듯 묻지도 않고 먹을 걸 놓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교회에서 말하는 사랑이 고작 이 정도였나? 신학생으로서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최근 한 정치인이 장애인을 윽박지르고 있다는 기사를 접했다. 지하철 시민들에게 불편을 준다면서 말이다. 비장애인 중심으로 짜인 사회에서 한 번도 편하게 이동할 수 없었던 시민, 휠체어를 탔다는 이유만으로 이동권을, 교육권을, 생존권을 박탈당한 시민을 계속 기만해온 정치권이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동료 시민과 싸움을 붙이고 있는 모습이 답답했다. 세계 10위 경제 대국 대한민국에서 노숙인은, 또 장애인은 여전히 역사에서 내쫓기는 존재일 뿐이다. 동정을 주지 말고 동등한 권리를 주라는 요구는 언제쯤 상식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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