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일 기자

도심 빌딩 곳곳에 거대한 현수막이 나부끼고 길바닥에는 명함이 굴러다닌다. 

봄바람에 취하고 형형색색 봄꽃에 마음을 빼앗길 계절이 왔건만, 미소 띤 거대한 얼굴들과 알록달록한 인쇄물들이 딴 데 보지 말고 날 좀 보라며 시선을 가로챈다. 다가올 지방선거에 나선 예비 후보자들의 부지런함이 빚어낸 풍경이다. 선거 현수막은 엄청난 양의 물과 화학물질을 사용한다. 합성수지 재질에 유성 잉크로 출력해 잘 썩지 않는다. 소각하면 다이옥신,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한다. 선거 이후 장바구니로 재활용하기도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명함 등 각종 공보물은 양면 비닐 코팅이 되어 있어 재활용할 수 없다. 예비 후보자들은 알고 있을까? 오는 22일이 52번째 맞이하는 ‘지구의 날’이라는 것을.

1969년 1월 28일 캘리포니아주 산타바바라에서 원유 시추 작업을 하던 중 원유 10만 배럴이 쏟아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인근 바다를 오염시켰다. 이를 계기로 1970년 4월 22일, 상원의원 게이로드 넬슨과 하버드 대학생 데니스 헤이즈는 환경문제에 관한 범국민적 관심을 촉구하고자 ‘지구의 날’ 선언문을 발표하고 다양한 토론회와 집회를 열었다.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환경집회에는 6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모였다. ‘지구의 날’은 이렇게 시작됐다. 

1972년 ‘지구는 하나’라는 주제로 스톡홀름에서 열린 ‘지구의 날’ 행사에는 113개국의 대표가 모여 환경 보전에 대한 각국의 협조를 다짐하는 〈인간환경선언〉을 채택했다. 이후 ‘지구의 날’은 범세계적 시민운동으로 발전해왔다. 한국은 2009년부터 ‘지구의 날’이 낀 일주일을 기후변화주간으로 정하여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저탄소생활 실천을 확산하기 위한 소등행사(10분) 등을 진행하고 있다.

춘천시는 지난 2019년 7월부터 ‘1회용품 없는 청사 만들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춘천경찰서·춘천소방서·춘천교육지원청·한림성심병원·한림대 등도 자율실천 협약을 맺고 동참에 나섰다. 또 지난해부터는 시 주관 행사의 경우 친환경 현수막을 사용한다. 친환경 현수막은 옥수수 전분과 사탕수수에서 실을 뽑은 원단으로 만들어 매립될 경우 6개월 이내 생분해된다. 

하지만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정치권이 가장 뒤처져있고 둔감하다. 공직선거에 사용되는 투표안내서·공보물·벽보·명함 등에 사용되는 종이를 저탄소 제품 인증 및 재생 종이로 한정하도록 하고, 온라인 홍보와 현수막 재활용 등 관련 법안이 지난해 발의됐지만, 상정조차 되지 않고 있다. 녹색연합은 6월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으로 현수막 13만8천192개, 벽보와 공보물 1만4천 728톤이 사용되어 2만772톤의 온실가스가 배출될 것으로 예상한다. 

지구의 깊은 한숨이 들리지 않는가? 그래서 제안한다. 누가 나오든지 무조건 찍는 양 진영의 지지자들은 제외하고, 누굴 선택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는 유권자들은, 친환경적인 캠페인을 펼치는 후보자를 선택하면 어떨까? 최소한 지구에 해를 끼치지 않을 사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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