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의 사랑법 / 김동규 지음 / 사월의 책 펴냄 

‘오늘날 사랑의 담론은 지극히 외로운 처지에 놓여있다’ [사랑의 단상] - 롤랑 바르트

‘내가 지한테 해준 게 얼만데... ’로 시작하는 마음가짐 앞엔 장사가 따로 없다. 모든 싸움의 시작이다. 조금 더 원색적으로 말하자면 내가 알파만큼 사랑을 주었으니 너는 오메가만큼 되돌려줘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번번이 상대는 기대했던 사랑을 주지 않는다. 불공정한 거래며 괘씸하고 불의한 일이다. 그래서 관계 파탄의 모든 책임을 상대에게 지운다. 내가 이기긴 이긴 것 같은데... 왜 찝찝하지? 

[ 생각, 사랑, 기억은 한통속이다. 자기사랑이 곧 타자 사랑이라는 말은 못난 내 모습까지 사랑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적용된다. ‘나를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이 유의미하려면, 내 못난 모습, 사회로부터 업신여겨지는 모습까지 사랑할 수 있다는 의미로 새겨야 한다. 성숙한 사람이란 모든 것의 중심에 사랑을 위치 짓는 자이자, 그런 사랑이 육화된 자이다. 사랑의 아바타다. 사람 중심의 사랑론이란 ‘사랑이 사랑을 사랑한다’는 사랑론이다. - 47쪽 ]

우리는 지금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몰라 사랑을 위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저자 김동규는 ‘철학 산문’이라는 에세이 형식을 빌려 호메로스와 플라톤에서 하이데거와 장 뤽 낭시(Jean-Luc Nancy)에 이르는 철학자들, 김소월과 윤동주에서 김수영과 나희덕에 이르는 시인들, 그리고 오수환과 강영길 등에 이르는 예술가들과의 열띤 대화 속에서 우리 시대 사랑의 의미와 가치를 찬찬히 짚어간다. 이 책은 사랑의 심해를 탐사하는 잠수정이다. 평범한 일상에서 사랑(죽음)의 참된 의미를 찾고, 서로 다른 사랑론에 뿌리내린 두 정서, 즉 한(恨)과 멜랑콜리를 비교하며, 지금 이곳의 현안들을 사랑의 관점에서 되짚어 본다.

용서라는 뜻의 외국어(forgive, pardon) 낱말에는 ‘선물을 주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용서라는 것이 무상의 증여이자 조건 없는 사랑이란 뜻이다. 용서할 수 있으려면, 용서하는 이의 사랑이 압도적으로 커야 한다. 이 압도적인 사랑이 의미하는 비대칭적인 사랑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이긴 것 같긴 한데 찝찝한’ 앞선 질문의 우문현답이 되어준다. [단테의 통찰에 따르면, 희망이 사라질 때 지옥문이 열린다. 하지만 그 무엇(돈, 권력, 인기 등)도 희망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희망이란 인생의 사막에서 일어서게 하는 신기루로서 오직 사랑하는 마음에만 깃든다. 희망은 사랑의 부대 현상이며, 사랑이야말로 마지막 희망이다. 사랑은 희망의 희망이다. - 270쪽]

류재량(광장서적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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