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내,문화이웃] 춘천의 누룩으로 빚어낼 우리 술 세계화
[봄내,문화이웃] 춘천의 누룩으로 빚어낼 우리 술 세계화
  • 박종일 기자
  • 승인 2022.04.19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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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철 전통주조 ‘예술’ 대표

‘김유정문학촌’, ‘책과 인쇄박물관’, ‘아트팩토리 봄’ 등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실레마을에 또 하나의 문화명소가 생겼다.

전통주 복원과 대중화를 위해 노력해온 1세대 주조장인(酒造匠人) 정회철(60) 대표의 전통주조 ‘예술’이 지난 15일 개소식을 열고 춘천에 첫인사를 건넸다. ‘예술’은 ‘단술 예醴’와 ‘술’을 합친 이름이며 ‘예로부터 내려온 술’을 뜻한다. 나아가 ‘술 빚는 그 자체가 예술’이라는 뜻도 담고 있다. 정 대표는 ‘예술’을, 일제가 전통 가양주 문화를 말살하면서 만든 ‘양조장’ 대신, 양온소(釀醞所) 또는 술공방‧술방으로 소개한다. ‘양온소’는 고려 시대 왕이 먹는 술을 빚은 관청인 ‘양온서’(良醞署)에서 따왔다.

학생운동·변호사·스타강사·로스쿨 교수… 전통주에 눈뜨다

전북 군산이 고향인 정 대표는 서울대 법과대학(81학번) 입학 후 학생운동을 하다 제적을 당했다. 군대를 다녀온 후에는 안산의 한 공장에서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나기도 했다. 이후 평택노동상담소 등을 거처 1994년 정부의 특례 재입학 조치로 복학, 1997년 사법시험(40회)에 합격했다. 

“판사 임용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어요. 노동운동 전력 때문이었을 겁니다. 연수원을 수료한 후 로펌에 들어갔는데 변호사 일에 도무지 끌리지 않았어요. 이건 나에게 맞는 일이 아니다! 싶어 바로 그만뒀습니다.”(웃음) 이후 집필과 강의에 주력했다. 사법연수원 시절 집필하여 출간한 헌법 수험서가 큰 인기를 끌며 신림동의 스타강사가 됐다. 

그가 술을 빚기 시작한 건 2006년 무렵이다. “수험서 개정판 저술과 고된 강의 등으로 건강이 나빠졌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인터넷으로 본 기사를 따라 막걸리를 빚으며 정말 행복했어요. 그게 시작이었죠. 술을 빚으며,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무언가를 창조해내는 것이라는 걸 깨달은 느낌이었습니다. 또 어린 시절 할아버지 심부름으로 양조장에서 주전자에 막걸리를 받아 다니던 추억도 영향을 주었죠.”

그러던 2008년에는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헌법 교수로 와달라는 제안이 왔다. 건강 때문에 수차례 거절했지만, 주위의 권유로 강단에 섰다. 그러면서도 전통주의 매력에 더욱 빠지며 술 빚기를 계속 이어갔다. ‘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 약 3년간 체계적으로 공부도 하고 아내와 함께 전국 곳곳의 이름난 양조장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취미에서 주조장인의 길로

전통주의 매력에 흠뻑 취한 그는 건강도 돌볼 겸 모든 일을 접고 홍천으로 향했다. 2008년의 일이다. “은퇴 후 머물기 위해 마련한 홍천 내촌면 동창마을 백암산 자락에 자리를 잡고 ‘음식디미방’ 같은 옛 문헌을 통해 전통주 만들기에 더욱 파고들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게스트하우스와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문화공간으로 가꿨습니다. 해마다 1천 명이 넘게 다녀갔어요. 술은 만들고 먹고 즐기는 세 가지가 함께 해야 한다 생각했고, 우리 술의 정체성을 찾고 더 많은 대중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2012년 마침내 주류제조면허를 받고 전통주조 ‘예술’을 창업했다. “전통주를 상품화하여 많은 사람이 찾고 나아가 세계적으로 우위를 점하는 술을 만들자 결심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전통방식이란 “일제강점기 이전의 술빚는 방식으로서, 쌀을 주원료로 하고 전통 누룩을 발효제로 사용하여 옹기에서 발효시켜 빚는 것”이다. 그가 빚어내는 술은 증류식 소주인 ‘무작53’과 ‘무작30’, 약주인 ‘동몽’(同夢)과 ‘동짓달 기나긴 밤’, 탁주인 ‘만강에 비친 달’, ‘홍천강 탁주’, ‘배꽃 필 무렵’ 등 7종류이다. 특히 ‘동몽’은 2018년 청와대 만찬주, 떠먹는 이화주 ‘배 꽃필 무렵’은 농림축산식품부의 ‘2020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 탁주 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 

재도약 위해 실레마을로

자연에서 건강을 돌보며 자그맣게 하려던 일이 전통주 복원과 대중화를 위한 의무감으로 커졌다. 그렇게 14년을 버텨온 그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춘천으로 터를 옮겼다. “전통주 문화를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전통주 상품화와 판매가 가장 확실한 방법이고 대량생산도 꼭 필요합니다. 춘천은 좋은 물과 자연이 있고 양온소의 효율적인 관리와 마케팅이 수월한 최적의 장소입니다. 지난해부터 준비해서 올 초에 터를 옮기고 쉴새 없이 바빴어요. 지난 8일에는 마을 주민들을 모시고 인사를 겸한 전통주 빚기 체험행사를 열었고 드디어 ‘예술’ 이전 개소식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예술’이 자리한 이 자리가, 알고 보니 김유정 선생이 살았던 시절에 술을 빚어 팔던 주막이 있던 바로 그 자리더라고요. 이 또한 운명인 것 같습니다.”

 ‘예술’이 빚어내는 7가지 전통주 

춘천의 누룩으로 세계적 술 만들고파

전통주에 관심이 커진 최근의 분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국인의 흥, 조상들의 멋이 담긴 전통주는 단순한 술을 넘어 가치 있는 문화에요. 조상들이 2천 년 동안 먹어온 200여 가지 우리 술의 정체성?! 바로 우리 자연의 균과 누룩으로 빚은 술입니다. 누룩이 전통주의 본질이죠. 누룩의 역사는 우리 술의 역사와 같습니다. 하지만 누룩은 일제가 우리의 가양주 문화를 없애고, 인공 배양된 일본식 누룩으로 술 빚는 방식이 전해지면서 사라져갔어요.

전통주는 누룩, 쌀, 물로 빚어요. 쌀(전분)을 발효시키려면 누룩(미생물)이 있어야 하는데, 이때 만들어지는 자연의 균은 100가지가 넘는 복합균입니다. 하지만 일반 막걸리는 실험실에서 안정적인 발효를 위해 인위적으로 배양한 단일균을 씁니다. 자연의 균으로 빚는 전통주는 와인으로 치면 내츄럴 와인입니다. 내츄럴 와인은 일반 와인보다 2~3배 비싼데도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죠. 한국은 아직 그런 인식이 부족합니다.

‘예술’의 전통주에 사용되는 우리 누룩

누룩은 지역의 균입니다. 춘천의 균이 있고 경기도의 균이 있다는 겁니다. 전통주는 어느 지역의 누룩(균)으로 만들었냐에 따라 맛과 향 나아가 정체성이 생겨납니다. 지역의 균이 전통주이며 특산주가 되는 겁니다. 우리도 직접 누룩을 만들어 춘천의 균으로 술을 빚습니다. 결국 ‘예술’의 술은 춘천의 특산주입니다. 최근에는 젊은이들도 전통술에 관심이 커요. 그런데 전통이라서 먹는 게 아니라 먹어보니 맛있고 그제야 우리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젊은이들에게는 새로운 술인 거에요. 이제 한 단계 도약할 기회가 온 겁니다. 국가가 누룩으로 술을 빚는 양조장에 정책적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정 대표는 앞으로 제조 공간을 넓혀 대량생산 체계를 갖출 계획이다. 세계의 술과 경쟁하기 위해서다. 또 하반기에는 ‘김유정역’(막걸리), ‘가을도 봄’(맥주 타입 막걸리) 등 춘천을 담을 신제품을 선보이고 체험프로그램도 시작할 예정이다.(문의 261-1525)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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