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운순 (강원이주여성상담소장)

갑자기 봄이 왔다. 여성가족부 존치 및 권한 강화를 요구하는 여성폭력피해자지원 활동가들의 어깨 위로 만개한 벚꽃이 떨어졌다. 집회현장 바로 옆이 경복궁이고 바람이 불 때마다 만개한 흰 벚꽃은 인수위원회 사무실과 도로 그리고 집회현장으로 묵묵히 떨어졌다. 줄지어 집회하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인수위원회 건물이 있었다. 봄꽃은 거리를 가리지 않지만, 사람은 그 짧은 거리를 두고도 서로의 인식이 갈렸다.

새 정부는 ‘이제 여성들의 삶은 안전해졌고, 구조적 성차별은 사라졌다’고 공표했다. 그러나 지난 한 해 강원이주여성상담소의 여성폭력상담건수는 2천706건이고, 그중 약 30%가 신체적 폭력을 동반한 가정폭력이다. 정서적 학대인 통제를 포함하면 폭력 건수는 더 늘어난다. 2017년 베트남에서 온 열아홉 살 후안마이가 남편의 폭력으로 늑골 열아홉 개가 부러진 채 사망했고, 2021년까지 총 21명의 이주여성이 남편에게 살해당했다.

상담소에서는 매주 일요일 한글교실을 여는데, 그중 몇몇 여성들은 언제나 아기를 데리고 온다. 아기들은 엄마가 공부하는 책상 근처에서 우유를 먹거나, 보행기를 탄다. 남편들은 조기축구를 가거나 낚시를 가지만 자녀를 돌보지는 않는다. 주 6일을 회사에서 일하는 아내는 일요일에 공부하러 갈 때도 자녀 돌봄의 역할을 맡는다.

이처럼 상담현장에서 만나는 대한민국의 가부장은 여전히 힘이 세다. 그래서 새 정부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말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세계경제포럼(다보스 포럼)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성별 격차지수는 156개국 중 102위, 여성의 경제참여 및 기회는 123위, 교육적 성취는 104위, 정치적 권한은 68위에 불과하다. 

다양한 젠더의 구조적 차별을 포함하기 위해 ‘여성’이라는 이름을 삭제하는 것과 여성부라는 조직이 소명을 다했으므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신념 하에 ‘여성’이라는 이름을 삭제하자는 것은 전혀 다르다.

레베카 솔닛은 “페미니즘의 목표는 남성을 배제하는 게 아니라 여성을 포함시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제 새 정부는 경복궁의 봄꽃이 다 지기 전에 남성을 배제하는 것이 아닌, 여성을 포함하는 여성 정책으로 그 의도와 방향을 다시 고민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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