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근거하여…(1987년 헌법 전문)

1922년 T.S 엘리엇은 <황무지>라는 시에서 4월이 잔인한 달이라고 명명하였다. 그 작품이 제1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신앙 부재와 정신적 황폐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배경과 상관없이 언젠가부터 우리에게도 4월은 잔인한 달이 되었다. 2014년 304명의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사건 때문에 더 잔인한 달이 되었다. 그리고 1980년 5월의 광주를 생각한다면 우리의 봄날이 잔인한 계절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에게 4월은 혁명의 달이기도 하다. 4월은 4·19혁명이 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1960년 3월 15일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 때문에 시위가 촉발되었지만 4·19에 이르러서는 독재정권 타도와 민주주의 실현의 혁명이 되었다. 독재정권의 무력 진압으로 학생과 시민 186명의 사망자와 1천500명이 넘는 부상자가 희생되었다. 4·19를 혁명으로 명명하는 것은 단순히 부정선거에 항거하는 차원을 넘어서 독재정권 타도로 이어졌으며, 대통령 하야를 끌어냈기 때문이다. 성공한 민주주의 혁명이다. 4·19혁명이 미완의 혁명이라는 평가는 부당하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도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해…’라고 명시되어 있다. 헌법 전문의 첫 문장이다. 그러나 4·19가 처음부터 헌법에 명시된 것은 아니다. 1948년 제헌 헌법에서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와 같이 3·1운동만 들어가 있다. 1960년 개정된 헌법에서도 4·19가 일어나기 이전이므로 당연히 명시되지 않다. 

4·19가 헌법 전문에 처음 들어간 것은 5차 개헌인 1962년 헌법이다. 전문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의 숭고한 독립정신을 계승하고 4·19의거와 5·16혁명의 이념에 입각하여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건설함에 있어서…’ 그러나 박정희 정권하에서 이루어진 개헌이라 4·19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였다. 4·19를 의거 정도로 격하해서 표현할 뿐만 아니라 5·16쿠데타를 혁명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런 서술은 1972년 박정희 정권이 독재를 공고히 하기 위해 개정한 소위 유신헌법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그러던 것이 민주화 항쟁의 결과로 개정된 1987년 헌법에 이르러서야 의거라는 딱지도 떼고, 5·16 혁명도 헌법 전문에서 사라졌다. 현재의 대한민국 헌법이다. 

4·19를 의거에서 민주이념으로 표현만 바꾸었다. 민주주의의 초석이라는 점에서 혁명으로 기술해야 옳다. 4·19혁명이 62주년이 되었지만, 그날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은 민주화 시대에 못 미치는 듯하다. 4·19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이유는 학생과 시민들 스스로가 독재정권에 맞서고 민주주의를 되찾은 최초의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민주화 역사의 시발점이다. 

4·19의 정신과 이념이 더욱 절실한 민주주의 위기의 시절이다. 이제 4월은 더는 잔인한 달이 아니라 혁명의 달, 민주주의의 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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