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시인)

내가 몇 년 전 어느 중국집에서 이런 대화를 들었다.

아빠, 김연아는 왜 자꾸 넘어져?

(그 아빠는 약 3초쯤 뭔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건 말이지.... 김연아는 남들이 하지 않는 것을 하기 때문에 넘어지는 거야. 남들이 하는 것만 하면 안 넘어질걸?

(초등학교 3학년 정도로 보이는 아들이 0.1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 그렇구나!

그날 그 식탁에 익명의 깐풍기 보내준 사람이 나라는 걸 굳이 밝히고 싶어서 이러는 건 아니다.


세월호 참사 8주기. 우리가 어떤 나라에 살고 있는지 칼에 베이듯 자각하게 만든 날. 배도 가라앉고 아이들의 목숨도 가라앉고 우리 시대의 진실도 가라앉은 날. 오히려 음모와 위선과 패륜과 악마성이 떠오른 날. 

팽목항 등대 옆에 펄럭이고 있었다는 이 시, 유족들과 상심한 시민들을 위로하려는 뜻에서 누군가 만들어 게양했을 이 시의 마음은 지금도 색이 바래지 않는다. 그래, 

다시는, 다시는 죽지 말자. 살아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손을 잡자. 기다리는 사람을 위해 기꺼이 집으로 돌아가자. 목이 메인다.


“검수완박”이 무슨 뜻인가요?

“검은콩은 수원댁네 밭에서 나고 완두콩은 박씨네 밭에서 난다”는 뜻인가요?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줄인 말이라는데 마음은 통쾌할지 몰라도 뭔가 억지로 윽박지르는 듯 어감도 별로인 용어로 공연히 위화감 조성할 필요 없습니다.

그냥 “수사권 기소권 분리”가 맞지 않나요?

그래야 국민들이 부드럽게 이해합니다. “검수완박” 뜻 실제로 모르는 분들 대단히 많습니다. 무슨 법률용어나 사자성어인 줄 압니다. 쉬운 말 두고 어렵게 가는 건 또 한바탕 진흙탕에 함께 나뒹굴어 보자는 프레임에 갇히는 것입니다. 쉬운 말 쓰는 사람이 진짜 고수입니다. 용어만 또렷해져도 설득할 수 있는 평수가 넓어지는 일 많습니다.


반성 - 류근

하늘이 함부로 죽지 않는 것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별들이

제 품 안에 꽃피고 있기 때문이다

죽음조차 제 품 안에서 평화롭기 때문이다

보아라, 하늘조차 제가 낳은 것들을 위해

늙은 목숨 끊지 못하고 고달픈 생애를 이어간다

하늘에게 배우자

하늘이라고 왜 아프고 서러운 일 없겠느냐

어찌 절망의 문턱이 없겠느냐

그래도 끝까지 살아보자고

살아보자고 몸을 일으키는

저 굳센 하늘 아래 별이 살고 사람이 산다

출처=류근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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