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창수(시인)

안경

고등학생 때부터 썼으니 안경 이력이 거의 반세기에 이른다. ‘목사(目四)’ 소리 듣기 싫어서 처음 몇 해는 공부시간에만 썼는데 좌우부동이 군 면제 수준이라 스무 살 이후론 눈물 머금고 ‘목사’로 살았다. 좀만 개겼으면 군대도 안 갔을 텐데… 암튼, 시력은 3~4년이나 4~5년에 한 번씩 감퇴가 확연해졌고, 그때마다 안경을 바꾸었다. 그러다 10여 년쯤 전 노안이 생겨나 다초점 렌즈라는 걸 장착하면서 목사 이력에 획기적 전환이 일어났다. 몇 해 전부터는 다초점 렌즈만으론 버티기 힘들어졌고, 안경 개수가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상용, 컴터용, 독서용, 티비 시청용, 운전용… 작업할 땐 책상 위에 비치된 세 개의 안경을 매우 기계적으로 매우 능란하게 옮겨쓴다. 이따금 독서용 위에 컴터용을 얹기도 하고, 컴터용을 쓰고 밖에 나갔다가 도로 들어오기도 하지만.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인류 최초의 안경 발명자는 자신의 묘비에 이렇게 쓰라고 유언을 남겼다. “신의 소중한 선물에 흠집을 낸 자, 여기 잠들다.” 또렷하게 보이는 것이 때로는 왜곡일 수 있다는 것 - 참 대단한 자각이다.

출처=하창수 SNS

각오

“앞으로 해야 할 일이나 겪을 일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가리키는 ‘각오(覺悟)’는 두 글자 모두 ‘깨닫는다’는 뜻이다. 뜻으로만 새기면 “깨닫고 또 깨닫는다”는 게 된다. 곧 닥치게 될 좋지 않은 일에 대비하는 마음자세가 ‘깨달음’ 하나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기이하기 짝이 없지만, 이즈음 돌아가는 모양을 염두에 두면 기이함은커녕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자녀의 편입과 병역 의혹으로 사퇴하려던 복지부장관 후보자가 돌연히 “어떤 부당행위 없이 공정했다”고 선회한 것이나, “사학비리가 있는 학교라도 정부가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는 발언의 주인공이 무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 앉을 수도 있는 현실에 대비하려면 ‘깨닫고 또 깨닫는’ 신공이라도 부리지 않고는 가능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군자는 가난해도 뜻을 바꾸지 않고(君子貧賤不能移) 위협하고 공갈을 쳐도 그 뜻을 굽히지 않는다(威武不能屈)고 했다. 각오란 이런 것이다. 앞으로 수도 없이 몰아치지 않겠는가. 뜻을 바꾸고 굽히라고, 시도 때도 없이 얼마나 위협하고 공갈을 치겠는가. 그러니 깨닫고 또 깨닫는 자세를 견지하지 못한다면 끝내 뜻도 바꾸게 되고 무릎도 꿇게 될 것이다. 지금의 일이니 지금만의 일인가 싶지만, 기실 사람 사는 세상마다 이렇지 않은 때가 없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꽃 떨어지는 데도 뜻이 있으나(落花有意), 흐르는 물길은 무정쿠나(流水無情)”며 눈물을 짓고, “사람이 착하면 업신여김을 받고(人善被人欺), 말이 착하면 사람이 올라탄다(馬善被人騎)”며 넋두리도 흘렸으니, 서재 창밖으로 무심히 잠잠한 의암호를 바라보며 어금니도 꽉 깨물어보고 주먹도 좀 단단히 쥐어본다.


출처=하창수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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