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구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장)

물이란 인류에게 공기와 마찬가지로 가장 소중하여 한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그러나 이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를 자주 망각하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인간은 참 간사하기까지 하다. 인류 문명 또한 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며 춘천의 고대 문명 또한 소양강과 자양강을 통해서 이룩되었다. 

봉의산은 춘천의 진산일뿐더러 춘천 역사의 살아있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봉의산과 연관된 많고 많은 역사 중에 고려 시기 몽골 침입보다 큰 사건은 없었다. 이 몽골의 침입으로 봉의산성이 함락되며 당시 부민은 절반 이상이 희생되며 춘천은 초토화되고 말았다.

몽골에 패한 원인 중 하나가 봉의산성 안에 마실 물을 확보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봉의산에 마실 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성안에 확보된 샘이 없었기 때문이다. 봉의산 자락에는 샘과 관련된 지명이 있는데, 옥천동 모수물 한우물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옥천동은 봉의산 남쪽 자락 첫 동네로 한자로 표기하면 玉泉洞이 되는데, 옥같이 맑고 깨끗한 샘물이 있는 마을이란 뜻이다. 옥천동에는 지금이라도 가동하면 사용할 수 있는 샘통이 여전히 마을에 있으며 일찍이 춘천의 중심부에 자리하였다. 

모수물과 한우물이 봉의산 자락에 있었지만, 그 실체를 지명과 어르신의 기억 속에서나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쉽기만 하다. 모수물은 묘정(妙井)에서 파생된 말로 묘정의 물이란 뜻이다. 묘정은 춘천 관아 옆에 있었으며 물맛이 말할 수 없이 뛰어나 묘할 묘(妙) 자를 얻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한우물은 묘정 근처 마을에 있던 큰 우물을 말하며, 필자 또한 이 우물물을 마시기도 하였고 정월 대보름이면 이 우물에 아녀자는 용알뜨기를 하였던 곳이다. 

봉의산 자락에 지금은 숨겨진 쉼터이면서 물맛이 좋은 곳이 있으니, 온수골 또는 약수골이라 불리는 곳이다. 온수골은 말 그대로 따뜻한 샘물이 나오는 골짜기란 의미가 되며, 소양1교 근처 소양정으로 오르는 언덕 오른쪽 골짜기에 있다. 이 온수골 석벽에는 벼슬을 한 사람들 이름과 함께 ‘온수동천溫水洞天’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동천洞天이란, 세상이나 세계로 풀이할 수 있으니, 온수동천은 따뜻한 샘물이 나오는 세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온수골 온수정과 관련하여 김영하가 『수춘지(壽春誌)』에 남겨놓은 시편을 통해 온수정의 실체에 접근하고자 한다.

고향 친구는 소나무와 함께 늙어가고 

故園有友送俱老(고원유우송구로) 

인적 끊긴 골짜기에 계수만 뚜렷하네.

空谷無人桂獨醒(공곡무인계독성)

오늘 이곳 오르니 마음속 느낌 많은데

此日登臨多感慨(차일등임다감개)

강물은 무슨 일로 그리 빨리 흐르는가.

滄浪何事奔流涇(창랑하사분류경)

천길 봉우리는 삿갓 모양 정자 되어서

千仞峰頭一笠亭(천인봉두일립정)

일찍이 비바람 견딘 세월이 아득하여라 

曾經風雨幾時冥(증경풍우기시명)

서산에 기우는 노을빛에 물새 떼 희건만

反照西山群鳥白(반조서산군조백)

황금 구름 들판에 소 한 마리 검푸르네.

黃雲大野一牛靑(황운대야일우청)

김영하 『수춘지』 「온수정(溫水亭)」 

고향 친구는 온수골에서 소나무와 함께 늙어가며 계수나무만 눈에 들어오고 찾아오는 사람은 많지 않았던 듯하다. 이어 시인은 기약하던 온수 골짜기 높은 곳에 올라서 바라보니 많은 생각이 마음속에 교차 되며, 무심하게 세월을 싣고서 빠르게 흘러가는 소양강이 눈에 들어온다. 소양강이 수많은 세월을 싣고 흘러갔듯이 시인이 서 있는 온수골 높은 터 또한 정자와 같은 기능을 하며 비바람 모진 세월을 견뎌왔음을 인식하기에 이른다.

시인이 발 딛고 있는 공간에서 무한한 강물과 미래로 무한정 지나갈 역사를 되새겨보니, 한 점으로 유한한 공간에 남는 시인은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매개자이자 실천자가 된다. 이는 유한한 인간의 존재가 무한한 자연과 물아일체가 되는 순간이며 역사의 현장이 된다. 서산에 기우는 노을빛에 등장하는 물새와 황금 들판을 지나는 소 또한 물아일체 삼매경에 들게 된다.

김영하의 시를 통해 봉의산 온수정은 춘천 시민에게 또 하나의 쉼터가 되고도 남음이 있다. 이렇게 자연과 인간이 물아일체가 되는 쉼터는 춘천에 여러 곳 있다. 그 가운데 고산 또한 이러한 대표적 장소라고 생각한다. 무한 흐르는 소양강과 무한 세월 지키고 있는 온수정이나 고산에 유한 인간이 올라 누릴 수 있는 행복으로 이것보다 큰 것은 많지 않을 것이리라.

허준구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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