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완연하다. 옷차림도 발걸음도 이젠 가볍다. 나에게 4월은 줄곧 생명력과 따뜻함을 느끼는 시기. 얼마 전까지도 그랬다.
4월 1일부터 기자생활을 시작하고 성매매처벌법, 세월호 8주기를 기사화했다. 나는 국민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그들의 입장을 처음으로 생각해보았다. 놀랍게도 그랬다. 더불어 4월에 장애인의 날이 있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지난주에 기사를 작성하다가 불현듯 깨닫게 된 부분인데, 부끄러웠다. 이어지는 생각이 많아 복잡해졌다.
이 사회에 뭔가가 잘못 흘러갔다면 언제부터일까, 무엇을 바로잡아야 했나. 그렇다면 지금은 손쓰기에 늦은 걸까.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이슈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나의 경우 어쩌면 내 삶이 지낼만해서, 힘들다가도 적당히 웃고, 먹고, 마시고…. 별로 아쉽지 않은 삶이라서, 일상에서 꺼내 볼 행복과 위안이 있어서. 그래서 불편을 느끼지 못했구나. 그들의 시각에 관심이 가지 않았구나. 여과 없이 살펴본 내 마음은 그러했다.
4월 16일, 외출하기 전 내 손바닥을 잠시간 바라보았다. 손바닥 위에는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는 노란 리본 열쇠고리가 있었다. 가방에 매달까, 내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고민이 앞섰다. 꽤 잠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누군가에겐 한없이 시렸을 4월을 8년 만에 엿보았다. 부끄러움이 앞서는 한편 난 무엇을 택할 것인가. 이대로 눈감을 것인가, 마주할 것인가. 부채감이 든다.
성매매처벌법에서도 세월호에서도 당사자들은 피해 상황만 해결하자는 입장들이 아니었다. 제2의 피해자, 제2의 피해 상황을 방지하려 했다. 보다 근본적이고 원대한 목표를 위해 적지 않은 기간을 감수하고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고 있었다. 이 부분을 알게 되자 위 주제가 단순히 피해자들만의 이슈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의 질문에 이어서, 정말 지금은 손쓰기에 늦은 걸까? 여전히 꾸준하게 맞서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엔 직접적인 피해자도 있고, 자발적으로 연대해서 마음을 다하는 사람들도 있음을,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왔다. 자원봉사도, 일시적인 참여도 아니다. 책임감과 소명의식이 깃들어있기에 같은 뜻을 이뤄갈 수 있는 것으로 이해됐다. 오늘날 민주주의도 꿋꿋하고 올곧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외침과 노력으로 이룩된 것이다.
날은 풀렸어도 아직 바다는 차가운 시기이다. 계절 따라 기온이 변하듯 전반적인 분위기에 묻어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이제야 차가운 바다가 눈에 들어온다. 예외와 사각지대가 있다는 걸 인식하려 하지 않으면, 계속 모르게 된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언론인으로 발을 내디딘 시점에서 내가 진정으로 관심을 가지고 귀 기울여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 이슈화하면 내 역할은 다한 것일까? 문제제기 후에 내가 할 일은 무엇일까? 물음표가 이어진다.
잊지 말아야 하겠다는 것. 잊기 시작하면 금세 내가 누리던 익숙함과 편안함에 초점이 잡힌다. 불편하지 않은 삶이다. 나만 챙기면 되는 삶. 날씨는 따뜻하다 못해 더워지는데, 왠지 우리네 마음엔 냉기가 도는 이미지가 그려진다.
과제가 생겼다. 중요한 문제가 흐려지지 않도록 나부터도 시야를 좁히지 않고, 언론인으로서 생각과 시각에 책임의식을 가지는 부분에서다.
이 계절이 시린 사람들이 온기를 찾기를, 봄이 누구에게나 봄이도록.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