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주택 /  비룡소 / 유은실 / 2021

순례주택. 제목만 보았을 때는 유행처럼 보이는 ‘공간 혁신’이나 ‘순례길’에 관한 책 같지만, 이 책은 공간을 채워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삶이라는 순례길을 걸어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어떤 ‘집’에서 살 것인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어떻게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를 유쾌하면서도 깊이 있게 이끌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어른’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에게는 성찰을, 어린 순례자인 ‘청소년’에게는 공동체적 삶의 방향성을 이끌어 낸다.

‘순례주택’은 평생 부모에게 기대어 비싼 아파트에 살던 수림이 가족이 할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폭삭 망하여 평소 자신들이 함부로 무시하던 순례주택으로 들어오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수림이의 아파트 가족들은 1군으로 불리며 우리 사회의 실체를 비춰주는 반면교사로 나오는데, 그 모습이 너무나 우스꽝스럽고 어이없지만, 우리 현실과 제법 싱크로율이 높아서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이와 대비되어 서술자로 등장한 16살 수림이의 높은 생활지능과 어른스러움, 김순례 할머니의 올곧은 신념과 ‘순례자적 태도’는 시종일관 따스한 웃음을 짓게 만든다.

순례주택의 건물주 순례씨(75세)의 이름은 ‘순하고 예의바르다’의 ‘순례(順禮)’에서, 순례자(巡禮者)에서 따온 ‘순례(巡禮)’로 개명한 것이다. 남은 인생을 ‘지구별을 여행하는 순례자’의 마음으로 살고 싶어서 개명한 것으로, 순례씨는 자신의 ‘이름’답게 지구별을 걱정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온몸으로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다. 

순례씨의 삶에 깊은 공감을 가지면서도 기성세대인 나는 생각했다. ‘순례씨’는 실제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누구나 만나고 싶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이데아적 인물을 보며 대리만족에 그치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수림이의 1군 가족이 순례씨보다 우리 현실에 더 가깝다는 것이 씁쓸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린 순례자들에게 순례주택이 알베르게 같은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산티아고 순례길 어느 작은 마을, 지친 몸과 마음을 녹인 알베르게 같은 글로 기억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는 작가의 말처럼 순례주택의 모습은 우리에게 인간이 가진 예의와 희망을 보여준다. 그리고 ‘자기 힘으로 살아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어른’이라는 순례씨의 말을 떠올리며,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이 ‘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이기적, 개인적, 독립적인 것이 마구 섞여 갈피를 잡지 못할 때, 독립적인 존재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순례주택의 가족공동체는 가족의 개념을 확대하여 실체화한다.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 순례씨가 좋아한다는 이 말처럼, 내 인생의 관광객이 될지, 순례자가 될지는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적어도 내 삶을 스쳐지나듯 ‘구경’하는 관광객은 되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순례주택 어딘가에 나의 작은 방 한 칸을 마련해본다.

박혜진(유봉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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