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발인식 엄수 춘천안식원에 안치
전방위 예술활동·온라인 논객·‘존버’ 창시

이외수 소설가가 영면에 들어갔다.

지난달 25일 타계한 고(故) 이외수 작가의 발인식이 지난달 29일 오전 호반장례식장에서 유족과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고인의 유해는 춘천시립화장장에서 화장 후, 생전 마지막 집필 활동을 했던 화천 다목리 감성마을을 경유하여 춘천안식원에 안치됐다.

이외수 소설가가 영면에 들어갔다.     출처=이외수 작가 SNS

고인은 2014년 위암 2기 판정으로 수술을 받은 뒤 회복했으나, 2020년 3월 뇌출혈로 쓰러져 3년째 투병하며 재활에 힘써왔다. 올해 3월 초 코로나19 후유증으로 폐렴을 앓아 중환자실에 입원, 투병 중 지난달 25일 한림대 춘천성심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작가는 춘천에서 30여 년 동안 작품활동을 이어오다 2006년 화천 감성마을 이외수문학관 건립을 계기로 이주하여 투병 전까지 집필 활동을 해왔다. 

고인은 1946년 경상남도 함양군에서 태어났다. 1965년 춘천교육대학교에 입학해 8년간 다녔지만, 1972년 중퇴하고 같은 해 강원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에서 《견습 어린이들》이 당선됐다. 1975년 《세대(世代)》지의 문예현상공모에서 중편소설 《훈장》으로 신인문학상을 수상했다. 

이후 단편소설 《꽃과 사냥꾼》(1976) 《고수(高手)》(1979) 《개미귀신》(1979)을 비롯해 첫 장편소설 《꿈꾸는 식물》(1978) 등을 발표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탐미적인 소설로 평가받는 《꿈꾸는 식물》은 가족의 몰락과 도덕의 상실로 현실감을 잃어버린 청년의 인생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이외수 마니아’라는 독자군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시 김현 문학평론가는 비평문 〈그 충격적인 섬세한 감수성〉에서 “아직 알려지지 않은 작가 이외수의 《꿈꾸는 식물》이 너무나 심하게 나를 고문한다. 섬세한 감수성과 뛰어난 상상력이 충격적”이라고 평하여 문단의 화제가 되기도 했다. 

고인은 안온한 일상을 거부하는 작가정신을 고수하면서 1979년부터 전업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단편소설 《박제》, 《언젠가는 다시 만나리》, 《붙잡혀 온 남자》와 중편소설 《장수하늘소》(1980), 장편소설 《들개》(1981), 《칼》(1982)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특히 초기 대표작으로 꼽히는 《꿈꾸는 식물》과 《장수하늘소》 등은 섬세한 감수성과 환상적 수법이 돋보이는 유미주의적 소설로, 신비체험과 초현실세계를 즐겨 다룬 이후 작품세계의 초석을 쌓은 중요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밖에도 장편소설 《벽오금학도》(1992), 《황금비늘》(1997), 《괴물》(2002), 《장외인간》(2005), 산문집 《내 잠 속에 비 내리는데》(1985), 《말더듬이의 겨울수첩》(1986), 《감성사전》,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1998), 《하악하악》(2008) 등 다양하고 폭넓은 작품을 펴냈다.

화가를 지망하기도 했던 작가는 서예를 비롯한 미술에도 조예가 깊어서, 글을 쓰기 전에는 미전에서 입상하기도 했다. 1990년 나우 갤러리에서 고 마광수 작가 등과 ‘4인의 에로틱 아트전’과 1994년에는 선화(仙畵) 개인전을 열었다. 철학적 삽화가 돋보이는 우화집 《사부님 싸부님》(1983), 《외뿔》(2001) 등을 통해서는 진정한 깨달음이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한편, 특유의 감각과 깊은 통찰력으로 시집 《풀꽃 술잔 나비》(1987), 《그리움도 화석이 된다》(2000) 등과 산문집 《감성사전》(1994)을 출간하는 등 폭넓은 집필 활동을 이어갔다. 또 MBC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출연, MBC라디오 〈이외수의 언중유쾌〉 진행 등 인상적인 방송활동도 선보였다.

고인은 이른바 ‘트통령’(트위터 대통령)이라고 불렸다. 현재 고인의 트위터 팔로워 수는 177만 명에 이른다. 트위터와 개인 홈페이지, 온라인 커뮤니티를 매개로 독자들과 활발하게 소통하며 각종 정치사회적 이슈에 대한 소신을 자유롭게 드러냈다.

‘온라인 논객’으로서 한국사회를 향해 돌직구를 날리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2008년 뉴라이트 교과서에 대해 “김구 선생을 테러분자라고 가르치는 세상”이라고 비판하거나, 이명박 정부의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는 자화자찬을 비틀어 “도둑적으로 완벽한 정부”라고 꼬집기도 했다. 

고인은 힘들어도 오래 버틴다는 의미의 신조어 ‘존버’의 창시자이기도 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힘겨워하던 지난 2020년 3월 19일 트위터에서 “혼자서 버티지 말고 함께 버티는 일종의 문화운동”인 ‘존버교 창시를 선포합니다’라는 게시글을 올렸다. ‘존버’는 학업과 취업 등으로 지친 청년세대들에게 희망과 용기의 메시지가 되어 널리 퍼지며 이제는 일상적 용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누군가의 기억 속 이외수

이외수 작가와 짧지만 소중한 인연을 간직한, 춘천이 고향이고 서울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이 추억을 전해왔다.

“청년들은 예나 지금이나 불안한 미래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존버’! 선생님이 창안하고 근래에 널리 퍼졌지만, 사실 아주 오래전 선생님은 제게 같은 뜻이 담긴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전공과 전혀 다르고 돈벌이도 잘되지 않는 일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하지만 낯선 분야에 뛰어들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할 용기가 나지 않아 여러 날을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동의 어느 곳에서 우연히 선생님을 마주치고 무작정 조언을 청했습니다. 일면식 없는 청년의 무례에도 잠시 시간을 내주셨죠. 오래전이라 그날의 대화를 온전히 기억할 수 없지만 대강 이런 말씀을 주셨습니다. ‘개뿔 살아남는 비결 같은 게 어디있냐?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그냥 존×게 버티는 거야. 그러다 보면 뭐든 되겠지.’

마음으로는 ‘성의 없는 조언’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그 말씀이 옳았습니다. 더하고 뺄 것 없이 사는 게 그런 거였습니다. 그래서 삶에 회한이 들 때는 ‘좀 더 존×게 버틸걸’이라고 자책하기도 합니다. 오래전 선생님 앞에서 밝혔던 꿈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삶에서는 ‘존×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고민에 빠진 후배들에게도 ‘존×게’ 버티라고 말하는 걸 보면 어느새 선생님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편히 쉬세요.”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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