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정(시인)

‘인간은 강인함으로 인해 위대해지지만 약점을 통하지 않고는 완성되지 않는다. 위인이란 존재는 철인경기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같은 종으로서의 긍지를 주어 인간을 고양시킨다. 반면 약점투성이인 사람은 때로 인간을 안심시키며 자신과 화해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수사관들은 알리바이가 지나치게 완벽한 용의자에게 의심을 품는다. 조금의 망설임이나 어긋남도 없이 앞뒤가 딱 들어맞는 것은 거짓말이기 쉽다. 완벽한 미모라면 성형미인일지도 모르고 기승전결이 완전한 스토리는 감동을 주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불완전하게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2005년 발표한 은희경의 장편소설 《비밀과 거짓말》이 눈에 들어왔다. 거대 이념의 붕괴와 사소한 것들의 부상으로 특징 지어지는 90년대의 대표 스타 작가. 은희경의 여덟 번째 소설이다. 기존의 매혹적인 냉소주의와 과감한 절연을 선택, 이 작품은 대단히 치열한 변신 의지와 그를 위한 치밀한 계산에 의해 발생하였다고 해설자 류보선은 말한다. 작가는 그동안 농담이나 냉소로 지배의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동시에 약자에 대한 연민 어린 시선 또한 놓치지 않는 작품들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럼에도 90년대 여성소설들이 갖는 멜로적 패턴과 과장된 슬픔과 고통의 기억을 통한 자기 연민의 미학이라는 비평에서는 자유롭지 못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다양하게 변주되는 사랑의 서사에서 아버지와 고향, 두 형제의 충돌과 갈등, 화해의 서사까지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이야기 속 인물들의 내면심리를 밀도 높게 그려냈다.       

비밀(秘密)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숨기어 절대로 드러내거나 알리지 말아야 할 비밀이고 다른 하나는 정보를 일정한 그룹의 사람들 사이에 공유하여 운영하는 비밀이다. 전자는 당사자가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는 일, 그로 인해 파탄이 예견되는 일에 해당되는 비밀일 테고, 후자는 공동 목표나 어떤 공적 대상의 보호를 위해 특정인들이 공유하는 기밀 같은 류이겠다. 가끔 둘을 혼동하여 서로의 약점이나 인생의 오점이 될 만한 일을 공유하다가 위기에 봉착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대단한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걸 알면서도 행하는 건 그만한 쾌락을 보상받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불완전하게 창조된 존재이기에 살다 보면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이때 꺼내 드는 무기는 대부분 거짓말이다. 비밀을 틀어막을 용도의 거짓말은 진실의 가치를 훼손하고 때로는 추악하게 만들기까지 한다. 고장 난 수전(水栓)에서 떨어지는 물을 막는 방법은 고장 났다는 사실을 재빨리 인지하고 수전을 고치는 것이다. 수전을 고칠 생각은 않고 고장 낸 사람을 찾는 데 급급하다거나 고장을 무시하고 방치한다면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새어나가선 안 되는 비밀이 샐 때의 대처란 어쩌면 너무나 간단하다. 새어나간 비밀을 현재진행형이 아닌 과거형으로 만들어야 하며 애초부터 과거의 일이었다면 진정한 사과와 반성만이 당신을 위기에서 구하는 첫 단추가 될 것이다. 그건 오로지 당신의 몫이다. 지방선거일이 다가오고 있다.       

조현정(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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