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석 문화컨설팅 바라 대표

‘○○○○ 춘천’. ○○○○에 들어가는 많은 수식어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수식은 ‘문화도시’이다.

하지만 문화예술이라는 기형적 단어가 ‘문화’를 협소하게 인식시킨다. 사실 문화는 정치·경제·사회를 아우르는 가장 포괄적인 영역이다. 지방선거에 뛰어든 후보들의 춘천 발전공약도 따지고 보면 문화적 전환에 기대고 있다. 춘천의 비전은 문화융성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춘천은 법정문화도시에 선정되어 2년 차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예술이라는 한정된 시각으로 문화도시를 이해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도시(사업) 춘천의 현재를 진단하고 의미 있는 제언을 듣고자, 권순석 문화컨설팅 ‘바라’ 대표를 만났다. 

그는 지난 2001년 도내에서는 처음으로 문화컨설팅을 표방한 기획사 ‘바라’를 설립했다. 춘천마임축제를 한국 대표 축제로 키워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며, 화천산천어축제·자라섬 재즈페스티벌·정선아리랑제 등 다양한 지역축제와 문화사업의 조력자 역할을 해왔다. 또 정부 업무평가 국정과제 평가지원단 위원(2014~2015년), 문화체육관광부 지역 문화컨설팅사업 평가 및 선정 위원, 생활문화진흥원 이사, (사)한국문화의집협회 상임이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이사, ‘대한민국 테마여행 10선’ PM 등을 맡아 왔다. 국내 유일 문화기획자 시상제인 ‘문화다움기획상131’(2017)을 수상했으며, 춘천에서는 법정 문화도시 사업, 문화예술교육, 전통시장 문화적 활성화, 생활문화 운동, 도시재생, 지역관광까지 아우르며 기획·자문·교육·연구 등 전 방위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Q. 원론적인 질문부터 하고 싶다. 춘천이 과연 문화도시인가? 문화로운가?

춘천시민뿐 아니라 한국인들 대부분은 문화라고 하면 예술 중심의 문화를 생각한다. 한국은 1970년대에 등장한 ‘문화예술’이라는 기형적 단어를 50여 년 동안 쓰고 있다. 문화예술이라 칭하며 예술적 행위를 문화의 모든 것으로 오해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문화와 예술이다. 예술은 문화에서 중요한 영역을 차지할 뿐이다.

시민들이 문화도시 춘천을 떠올리면 주말 곳곳에서 축제와 공연, 전시가 펼쳐지는 걸 떠올린다. 하지만 그것만이 문화도시가 아니다. 문화는 삶의 모든 영역에 존재한다. 시민의 삶의 방식이고 도시가 작동하는 방식, 도시가 갖는 민주성, 시민운동, 새로운 가치에 대한 수용력 등 한 도시가 갖는 품격이다. 그런 면에서 춘천이 문화도시냐고 묻는다면 갈 길이 멀다. 예술 중심이 아닌 실제 시민의 삶의 문화, 도시와 시민들이 어떤 상황과 이슈에 대처하는 문화적 태도라는 면에서 갈 길이 멀다는 거다.

Q. 공감한다. 그런 맥락에서 ‘전환’이라는 문화도시 비전을 이해할 수 있겠다?

그렇다. 문화도시에서 전환은 어떤 목적을 정하고 그곳으로 가자는 게 아니다. 춘천의 도시문화에 의문을 품고 있다면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도시, 바꿀 수 있는 문화를 가진 도시를 시민이 주도적으로 만들자는 거다. 전환의 가치에 대해서 도시와 시민들이 수용해내고, 도시가 그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추동력을 만들어내는 문화를 가져서, ‘나’로부터 ‘도시’의 전환까지 가능한 도시를 만들자는 거다.

Q. 시민과 정치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

전환이 가능한 도시, 전환이 가능한 문화를 가진 도시가 되려면, 환경·기후위기·인권·젠더 등 지구적 의제가 나와 내 가족의 문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래서 시민 개인의 욕구로부터 출발한 소소한 문화 활동이 지구적 의제와 연결되어야 한다.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다양한 시민운동에 시민의 참여를 늘리는데도 그런 게 필요하다.

정치권에서는 지구적 의제를 춘천의 의제로 삼아, 현재에 대한 진단에 근거해서 이런 방식으로 이런 사업을 통해서 해결하겠다는 게 공약으로 나와야 한다. 하지만 그저 눈에 띄는 사업의 나열이다. 전환이 가능한 문화를 가진 춘천을 만들려면 정치·사회·경제·문화라는 오래된 틀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

Q. 문화도시 사업 중에도 개인의 욕구로 출발해서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려는 사업이 여럿 있다. 첫 단추는 잘 뀐 건가?

평가하기 아직 이르지만, 방향은 잘 잡았다. 일단 시민들이 반응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다. 시민이 어느 날 갑자기 삶을 전환해야겠다고 결심하는 일은 생기지 않는다. 문화도시 사업이 그런 계기를 제시하고, 시민이 그런 계기를 통해 전환의 가치를 느끼는 사례가 조금씩 쌓이면, 삶의 전환이 수월해지는 단계가 언젠가 펼쳐질 거다. 그래서 5년간의 중장기 사업인 거다. 아직 성에 차지 않을 수 있지만, 방향은 잘 가고 있다.

Q. 그런데도 문화도시 사업 자체 혹은 문화재단의 시스템에서 개선할 점이 없진 않을 거다.

물론이다. 문화예술 현장을 뒷받침하는 기초문화재단의 사업방식은 시민 서비스 과정에서, 지원 방식이 용역과 보조금 두 가지 방식밖에 없고 특히 보조금 방식이 많다. 그런데 보조금은 기획비와 인건비 등을 가져갈 수 없고 대상부터 방식까지 제약이 많다. 그래서 차라리 용역이 낫다는 예술가들의 의견이 많다. 

가령 어르신 문화사업을 예술단체가 제안했을 때 기획비용부터 인건비까지 책정되어야 생계가 유지되고 공익목적도 달성되는데, 한국 문화예술 예산의 대부분이 예술가들을 그저 연명시켜주는 보조금이 대부분이다. 과거의 농업정책처럼 말이다. 매번 같은 비용이 투입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며 재생산이 가능한 구조가 생기지 않는다. 의존도만 높아지고 있다.

용역과 보조금 말고 제3의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요즘엔 계획공모, 통합지원 등 다양한 실험이 있다. 전국의 도시들이 법정문화도시 선정에 뛰어드는 이유는 지역의 문화도시 비전을 지역이 스스로 설계하고 중앙정부가 인정하여 그 계획에 예산을 투여하는 일종의 계획공모방식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목적지향의 장르 중심(미술·연극·문학) 지원이었지만, 지역이 필요로 하는 것을 지역이 직접 할 수 있게, 한 도시에 5년 단위로 지원하는 건 처음이다. 

그런 면에서 지역 차원에서도 기초문화재단은 지역의 예술가와 시민의 문화 활동 지원에 계획공모방식 같은 걸 고민할 때가 됐다. 춘천문화재단도 잘하고 있긴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모든 기초문화재단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해야 할 과제가 있는 거다.

법정문화도시 사업의 경우, 가장 핵심이 분권과 자치임에도 중앙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중앙정부가 선정과정에서 심사하고, 선정 이후에는 평가하고, 평가를 통해 예산을 차등 지급(인센티브) 하기 때문이다. 기초문화재단이 위아래로 돌을 맞는 고충이 있다. 그걸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Q. 트렌드에 민감한 눈 밝은 시민이 아닌, 먹고 살기 바쁜 시민에게 다소 거리감이 있다는 의견도 들린다.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대외적으로 전국의 문화도시 중에 춘천이 잘한다고 평가받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 조금 아쉽다. 힙한 문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춘천에 많이 늘어나는 건 좋다. 하지만 특정 세대 언어 중심으로 전개되면 어렵고 낯설 수 있다. 먹고 살기 바쁜 평범한 시민들이 익숙한 언어의 쉬운 사업에 참여하고, 이후 다음 단계의 실험적이고 힙한 사업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층위가 입체적일 필요가 있다. 

또 고학력과 경제력을 갖춘 시민들이 여가활동으로 왔다가 다양한 사업에 참여하며 문화도시 시민참여 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 경우도 눈에 띈다. 사업 초기에는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지만 그게 더 공고히 되면 그들만의 리그가 된다. 그렇게 되는 순간 문화도시는 실패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따라야 한다. 선수 육성과 대중 만남에 균형을 맞춰야 한다.

문화영역에 종사하는 다른 지역 청년들이 춘천을 많이 부러워한다. 기회가 많아서가 아니라 자기들의 언어로 말했을 때 들어줄 공공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힙한 청년들이 춘천에 정착해서 일자리가 생기고 현장 곳곳으로 나가는 단계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일과 대중과 만나서 하는 문화 활동의 질적 간극도 느끼면서 이를 중화하는 완충지대도 만들어져야 한다.

Q. 여러 중간지원 조직들의 유사사업이 많다.

기대만큼 분업과 협업이 원활하지 않아서 중복사업이 많아 보일 수 있다. 문화도시센터, 마을자치지원센터, 춘천사회혁신센터, 협동조합지원센터, 먹거리통합지원센터, 청년청, 도시재생지원센터, 춘천문화원, 근화동396 등 여러 중간지원조직들이 만나서 목표를 공유하고 역할을 나누면 사업은 하나이지만 내용은 분리되어 진행할 수 있다. 

마을자치지원센터의 마을 박물관 사업을 예로 들면, 시민들이 자치활동으로서 우리 마을의 무엇을 기록할까 논의·토론·합의한 후, 우리가 협의 논의한 것이 이렇게 기록될 수 있구나라는 성취감을 경험하는 게 첫 순서다. 그다음 협업으로 가서 춘천학연구소의 아카이빙 사업과 연계시켜서 시민의 아마추어적 관점과 전문가의 관점이 매칭되게 하는 거다. 또 그다음으로 문화도시 센터가 문화도시 사업으로 받아들여서 문화적으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이렇게 공동의 목표를 갖고 분업의 형태로 가면 좋겠다. 또 사회혁신센터가 도시실험으로 진행하는 도시농업도 지역에 보편화 되려면 이를 받아들이는 도시문화가 형성되어야 하기에 문화도시 사업과 협업할 것이 정말 많다. 그들도 모르는 거 아니다. 그런데 한정된 인원에 일은 산더미처럼 많아서 말처럼 쉽진 않다. 시스템의 근본적인 문제이다.

Q. 공감한다. 그런 면에서 협업을 이끌어내는 총괄문화기획자 같은 존재가 필요할 것 같다. 권 대표가 생각하는 대안은 무언가?

그런 존재도 의미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우선 춘천시 행정에 가치 중심의 조직이 필요하다. 전북도에 있었던 ‘삶의 질 정책과’와 시골 마을목욕탕 사업이 대표적이다. 가치 중심적 조직의 직원들은 “이 도시에 뭐가 필요하지?”라는 기본적인 고민을 바탕으로 여러 주체와 적극적으로 만나 협업한다. 기능 중심의 행정 체계에서는 질문보다는 눈앞의 사업만 신경 쓴다. 행정 안에 그런 조직을 두기 어렵다면 중간지원조직이 할 수도 있다.

문화도시 사업은 춘천시 행정이 펼치는 여러 문화사업 중 N 분의 1이 아니다. 문화도시 사업은 춘천을 새롭게 디자인하는 상위개념으로서 정치·사회·경제·문화라는 틀을 넘어서 진행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문화도시센터가 사업 수행 기능에 머물 것이 아니라 도시의 시스템과 정책 논의 기능까지 맡을 수 있도록 위상을 높여야 한다.

가령, 문화재단이 문화활동 거점 공간에 대한 맵핑(mapping)작업을 이미 했는데 그걸 토대로 산책로를 중심으로 구도심과 신도심을 연결하여 퍼스널 모빌리티를 타고 거점 공간을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거다. 또 청년들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문화 바우처 등을 도입한다면 경제적·물리적·심리적 접근성이 나아지며 문화향유가 더 확대될 것이다. 그런 걸 문화도시센터가 주축이 되어 혁신센터가 협업하며 행정을 이끌어 갈 수 있어야 한다. 춘천이 문화도시가 된 게 아니라 문화도시가 되기 위한 5년간의 사업 기회를 얻은 거다. 계획대로 되어 정말 문화도시라고 자부할 수 있는가는 5년 후에 판단할 일이다. 

Q. 전환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문화인프라가 부족하다.

시민들이 나의 편의에 맞춰서 쓸 수 있는 문화공간 즉 생활문화 공간이 절대 부족하다. 문화복지 및 생활문화 차원의 문화기반 시설인 ‘문화의 집’이 강릉에는 ‘강릉문화의 집’, ‘주문진문화의 집’. 원주에는 ‘원주문화의 집’, ‘판부문화의 집’. 태백시에는 ‘태백문화의 집’, 고성군에는 ‘고성문화의 집’이 있다. 박근혜 정부부터는 ‘생활문화센터’라는 이름으로 신규 조성이 되고 있는데, 원주는 생활문화센터가 미디어센터에 신규로 건립된 바 있다. 춘천엔 아르숲 생활문화센터 단 한 곳밖에 없다.

춘천시민의 생활문화 영역 지수가 낮은 건 하드웨어가 부족한 탓이 크다. 다행히 문화도시 사업으로 ‘전환가게’, ‘인생공방’, ‘모두의 살롱’ 등 거점 문화공간이 읍면동마다 하나씩 들어설 예정이다. 이를 통해 생활권에서 문화도시 효능감을 높이려는 비전을 내세운 건 잘한 거다. 문예회관을 읍면동마다 지을 수는 없는 거 아닌가? 또 교육지원청 건물이 문화예술교육 거점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2~3년 후에는 시민들이 효능감을 느낄 수 있을 거다.

Q. 인프라에 대해 좀 더 말하자면, 도시의 섬 같은 후평공단이 참 아쉽다. 

공감한다. 층고도 높고, 전력설비도 좋아서 미술관·공연장 등 폭넓게 활용할 수 있다. 또 시민 문화 활동 접근성도 좋고, 강변과도 가까워 시너지도 크다. 그런데 대부분 개인소유라 이해관계가 너무 복잡하게 얽혀서 풀기 어렵다. 누군가는 매듭을 풀어야 한다. 도시안의 섬으로 계속 놔둘 수는 없다.

춘천은 물리적으로 도시 팽창에 한계가 있다. 지금 규모에서 완벽한 자족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삶의 방식이 존재하는 도시, 그런 문화와 비전을 춘천의 여러 영역이 공유해야 한다. 문화도시 사업도 그 가치들을 담아서 그것을 시민문화로 만드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각 거점 공간들이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

그런데 공공이 만드는 공간들은 한계가 있다. 만들어지는 순간 예산을 계속 투입해야 유지되는 구조다. 그렇다면 병행해야 한다. 복지영역의 실험을 참고할만하다. 가령 4층 건물을 지을 때 복지 용도의 공간을 조성한다면 그 이상의 용적률을 허가 해주는 실험이 있다. 문화영역도 공공이 문화공간을 짓고 운영까지 다 하기 어렵다면 민간이 그걸 보완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건물을 지을 때 1층에 문화공간 조성을 유도하는 것도 좋은 정책이다.

지역에서 시민들이 도시를 바라보는 방식 중 하나가, “서울에는 이런 게 있는데 춘천에는 없어”라는 결핍의 시선이다. 결핍을 메우는 좋은 방법은,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직접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제도를 통해 시민이 직접 만들게 하는 거다. 결핍의 시선을 넘어 불편하지만 괜찮은 방식들을 얼마든지 펼칠 수 있는 도시가 되어야 한다.

 

 

문화도시 춘천, 오늘! 여기!에 답해야

 

Q. 최근 시민협의체 봄바람도 공식 출범하고 시민참여의 문이 활짝 열렸다. 더 많은 참여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무언가?

첫째, 대중적 언어로 좀 더 친화적으로 다가서는 태세전환이 필요하다. 시민들에게만 문화활동으로 태세전환 하라고 요구할 것이 아니라 재단과 문화도시센터의 태세전환도 필요하다.

둘째, 시민이 느끼는 효능감이 중요하다. “문화도시 됐다던데 내 삶은 어떻게 변했지?”라고 자문했을 때 변했다고 말하는 시민이 얼마나 될까? 센터는 나름 다양하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왜 아쉬운 목소리가 계속 나올까? 시민들은 왜 더 크게 체감하지 못할까? 이제 고작 2년 차에 들어섰기 때문에 당연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시민들이 더 넓고 생생하게 체감할 수 있는 문화도시가 되려면 문화도시 사업을 통해 시민이 효능감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많은 매체, SNS, 재단 홈페이지 등을 통해 열심히 알렸는데 왜 잘 모를까? 혹시 정보 전달에 개선이 필요한 건 아닐까? 

최근 문예회관 기획전시 〈알 수 없는 너〉가 정말 좋았다. 세계적인 작가 한영욱이 10여 년 만에 고향에서 하는 특별한 전시회였다. 홍보도 많이 해서 근래 전시회 중 큰 호응이 있었지만, 몰라서 못 본 시민도 많다. 더 많은 시민이 볼 수는 없었을까? 

그러려면 시민들에게 ‘오늘’ 그리고 나의 생활반경인 ‘여기’서 무엇이 열리고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플랫폼이 있다. 바로 ‘당근마켓’이다. ‘당근마켓’을 참고할만하다. ‘당근 마켓’은 철저히 사용자 중심이다. 내가 필요한 정보를 내 중심으로 얻을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점이 대중을 사로잡았다.

문화적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다. 문화도시는 정보전달체계가 정말 중요하다. 시민들의 효능감을 높여주고 사업이 역동적이어야 하고 시민 의견도 수시로 폭넓게 받아야 한다. 주말이든 주중이든 내 편한 시간에 내가 있는 위치에서 정보를 얻기 원하는 세상이다. 그 중심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당근마켓’ 같은 형식의 플랫폼이 문화도시를 위한 굉장한 플랫폼이 될 수 있다.

셋째, 춘천을 읍면동 단위가 아니라 생활권 단위로 분석할 필요도 있다. 가령 퇴계동 집과 효자동 직장 그리고 그사이에 자리한 공공기관과 마트를 이용하는 시민은 그 생활반경 안에서 효능감을 얻을 수 있는 다양한 정보를 찾는다. 문화도시의 정보도 그런 생활반경에 맞춘다면 엄청난 변화가 생길 거다. 꼭 ‘당근마켓’과 협업하지 않아도 장점을 받아들여 유사한 플랫폼을 만들면 된다.

넷째, 배우고 싶은 건 다 배울 수 있는 웹사이트 ‘클래스101’도 참고할만하다. ‘클래스101’에서 한 해 동안 예술강사에게 지급한 금액이 무려 4백억이 넘는다. 그만큼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고 엄청난 효능감을 얻고 있다는 거다. 민간의 영역에서 그걸 해내고 있다. 그러면 비영리 공공영역에서는 무엇을 해야 하나? 그들과 경쟁? 아니다. 영리 목적으로는 할 수 없는 일과 그곳에서 소외된 대상들에게 문화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문화도시가 할 일이다.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알리고 그렇게 모인 시민들에게 효능감을 준다면, 문화도시 사업에 시민참여가 대폭 늘어날 수 있다.

Q. 문화도시 사업 현장에서 토박이보다 이주민들의 참여가 눈에 띈다.

그렇다. 문화도시 조성에 나선 도시들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지역에서 문화에 반응하는 건 토박이가 아니라 이주민들이다. 춘천도 마찬가지다. 이주민 또는 귀향민이 문화 활동에 더 적극적이다. 왜? 토박이들은 이곳의 질서에 익숙하고 타성에 젖어있다. 굳이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아도 불편하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바깥의 관점으로 긍정적인 걸 본다. “이거 즐겨야지. 이 좋은 걸 왜 안 즐겨!” 이런 심리다. 춘천의 자연은 그들에게 신세계다. 여기서 뭔가를 하고 싶다는 자극을 준다. 이 동력을 토박이들도 갖게 해야 한다. 어떤 사업으로 가능할지 고민해야 한다. 

Q. 젊은 예술가들의 유입도 필요하다. 곧 예술촌도 본격 운영된다. 유입의 동력이 될 수 있을까?

예술인을 관광자원으로 삼겠다는 발상은 실패했다. 전국의 예술촌 사업이 그래서 모두 망했다. 창작과 주거공간이 없는 예술가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공간을 줄 테니 당신들은 시민에게 서비스하라.” 이런 게 공공의 발상이 돼서는 안 된다. 예술의 사회적 효용가치에 지원하기에 앞서 예술 자체를 지원해야 한다.

새로 조성된 예술촌은 창작여건에 더 충실하게 예술가들의 공간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예술가들의 쓰임새가 전혀 반영되지 못했다. 아마 곧 다시 손을 봐야 할 거다. 이후에는 오직 예술가들만을 위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애초에 저런 시설보다는 한적한 곳에 제대로 된 커다란 공동창작공간을 지어주는 게 좋았겠다. 더불어 청년예술가들이 지역에 안착할 수 있도록 주거를 제공하는 게 효과적이다. 

굳이 예술가들을 시민 서비스의 장으로 끌어들이지 말아야 한다. 예술가들은 전시하고 공연하고 대중과 만나고 싶은 기본욕구를 지녔다. 이들이 창작을 많이 하게 하면 어떤 식으로든 시민과 만나려고 한다. 창작과 인프라에 지원해주면 시민 서비스는 자연스레 따라온다. 그걸 사업으로 하면 안 된다. 

또 하나 중요한 게 있다. 춘천의 문화예술 영역에서 꼭 필요한 존재는 예술경영 및 기획자들이다. ‘개나리 미술관’의 정현경 관장 같은 인물이다. 이주민인 그는 ‘개나리 미술관’을 통해 공공이 미처 하지 못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정치인과 행정은 그런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지속할 구조가 춘천에 빈약하다. 예술가를 위한 창작지원만큼 예술경영 및 기획자들의 기획에도 지원을 늘려야 한다. 그래야 그런 사람들이 춘천에 유입될 수 있다. 그래야 예술가들도 살고 시민들도 문화도시 효능감을 느낄 수 있다.

Q. 새로 들어설 지자체 집행부와 시 의원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나?

권력을 잘 쓰려면 도시를 제대로 진단해야 가능한데 많은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개발중심이다. 시민이 잘 안 보인다. 실질적인 의제를 뽑아서 합의를 거쳐 몇 년 후 시장이 바뀌어도 계속 이어질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일을 누군가는 해냈으면 좋겠다. 

특히 삶의 방식으로서의 도시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령 시내버스 같은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을 거기서 찾아야 한다. 또 젊은 세대의 잠재력을 높게 봐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선택을 실천으로 옮길 줄 안다. 불편한 방식도 그것이 새로운 문화나 트렌드라면 받아들이고 실천한다. 기성세대는 그렇지 않다. 기존의 것을 바꾸지 않는다. 춘천이 바뀌는 건 다음 세대의 몫일 수 있다. 그게 가능하게 만드는 도시, 전환을 수용하는 도시의 토대를 만들겠다는 자세를 갖췄으면 좋겠다.

Q. 향후 중앙정부 문화정책에 바라는 점이 있는가?

문화와 예술을 분리해야 한다고 다시 강조한다. 일단 두 가지가 바로 잡혔으면 좋겠다. 한국 문화정책은 1사무관 1법 1진흥원 체계다. 가령 문화예술교육과의 한 사무관이 ‘문화예술교육진흥법’을 갖고 ‘문화예술교육진흥원’을 통해서 전국 단위 사업을 진행한다. 그 의사 결정 구조의 정점에 행시 출신의 사무관 한 명이 있다. 그들을 무시할 의도는 없다. 다만 현장에 대한 이해와 그간의 맥락,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가 문제다.

또 지역도 민간으로 구성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같은 기구가 기초문화재단과 같은 기능을 하는 사무처를 두고, 민의를 받아서 문화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그걸 행정이 돕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 또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국가예술위원회로 승격시키고 법에 근거한 재원을 확보하여 예술을 진흥시켜야 한다. 한편으로는 지역문화진흥원을 그야말로 지역문화진흥발전에 집중시키고 장관의 자문기구에 머무는 지역문화협력위원회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보장해야 한다. 이것만 해도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고, 문화정책에서 자치와 분권이 좀 더 보장될 거다.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란다.

권 대표와의 대화는 머리 위에 있던 태양이 건물 너머로 몸을 숨길 무렵에야 마무리됐다. 그는 춘천에서 청년과 선배세대가 격의 없이 교류하는 문화가 사라져가는 게 가장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래서 언젠가 은퇴를 하면, “청년 기획자와 예술인들을 만나러 다니며 ‘잘하고 있다’고 ‘참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어깨 두들겨주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가 그 길에 기자도 초대해주었으면 좋겠다.

박종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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