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SNS] 하창수의 소설네트워크-7
[주간 SNS] 하창수의 소설네트워크-7
  • 하창수(시인)
  • 승인 2022.05.10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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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창수(시인)

시성이 악양루에 오른 까닭

한 해 전 이맘때에 쓴 글씨 한 점을 건다. 두보의 ‘등악양루’다.

昔聞洞庭水(석문동정수)/ 今上岳陽樓(금상악양루)/ 吳楚東南坼(오초동남탁)/ 乾坤日夜浮(건곤일야부)/ 親朋無一字(친붕무일자)/ 老去有孤舟(노거유고주)/戎馬關山北(융마관산북)/ 憑軒涕泗流(빙헌체사류)

전부터 동정호 얘기는 들었으나/이제야 호수 훤히 보이는 악양루에 올랐네/ 오나라와 초나라가 동남으로 갈라지고/ 하늘과 땅이 낮밤으로 호수 위에 떠있구나/ 친구에게선 짧은 편지조차 오지 않고/ 늙은 몸에 있는 건 그저 외로운 배 한 척/ 관산 북쪽엔 아직 전투가 그치질 않으니/난간에 기대어 눈물 흘린다

두보는 참으로 시성(詩聖)이다. 그의 시들은 대개 어렵지 않지만 깊다. 곱씹어보면 감회가 온몸에 퍼진다. <등악양루>를 혹자는 우국충정의 시로 읽고 혹자는 인생무상의 시로 읽지만, 정작엔 그런 감상을 무화시키는 뭔가가 있다. 후려치지 않아 오래 아프고, 슬그머니 들어선 한기에 뼈가 저리다. 왜 사는가… 묻지 않는데, 사는 것의 전모를 허무의 바닥으로 가라앉힌다. 이런 걸 해서(楷書)로 반듯하게 쓰는 건 여간한 공력이 아니면 힘들지 싶다. 어지간한 행서(行書)로도 그렇다. 하여 ‘초서 사전’을 하염없이 뒤적거려야 흉내라도 낼 수 있는, 그것도 파지가 산(!)처럼 쌓여야 겨우 하나를 건질 수 있는 초서(草書)로 쓴 거다. 언젠가 초서가 제법 손에 익어 오롯이 두보의 감성을 한달음에 꿸 수 있는, 저 높은 수수화조(隨手和造)의 첫맛이라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턱없이 바라는 마음이다.


전쟁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면서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두 달을 넘겼다. 시작부터 그랬지만 보도의 중심은 시종일관 러시아에 대한 비난이다. 나토 가입을 둘러싼 미국의 무리수나 우크라이나 정부의 등거리 외교의 실패, 러시아계의 비율이 70%가 넘는 국경지역 소도시들에 오랫동안 서방 무기들이 반입되며 러시아를 자극한 사실 등은 DW(도이치 벨레) 같은 일부 유럽 중립언론의 기사들을 퍼 나르거나 수고를 들여 우리말로 옮긴 극소수 평화주의자들에 의해서나 거론되었을 뿐이다.

지난달 초에 보도된 ‘부차 학살’은 러시아의 잔혹 행위를 극적으로 부각시켰지만, 결과적으로는 진실 규명 자체를 거의 불가능한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NYT(뉴욕타임즈)가 위성을 조작했다는 러시아의 주장이 제기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가 BBC 등 서방언론이 재반박하면서 칡덩굴이 휘감아버린 것이다. “거리의 시체가 팔을 움직였다”와 “거리를 촬영하던 차량의 창문에 묻은 얼룩 때문에 팔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로 상징되는 〈같은 사실에 대한 전혀 다른 보도〉는 언론이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거한다. 정치적 포지션에 따라 팩트가 언팩트가 되고 언팩트가 팩트가 되어 독자들의 판단을 좌우해버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언론이지만, 이제, 언론은 ‘독자들의 판단을 좌우하기 위해 존재하는 강력한 매체’로 굳어져 버렸다. (물론 모든 언론이 그런 건 아니다!)

대한민국에는 실질적인 전쟁체험 세대가 존재하지 않는다. 좀 넘겨짚자면, 80대만 하더라도 어린 시절에 한국전쟁을 겪은 탓에 전쟁의 진짜 무서움을 뼈저리게 절감했다고 보기 힘들다. ‘전쟁불사’니 ‘선제타격’을 매우 중요한 공약처럼 언급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현실이 이를 반증한다. 대통령 당선자의 공격적인 발언이나 그의 당선은 “전쟁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일어나서는 안 된다. 전쟁은 일어나는 순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수반한다”는 상식이 얼마나 쉽게 무화될 수 있는지를, “까짓것 전쟁 일어나서 싹 쓸고 다시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식의 무시무시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사람들이 의외로 적지 않다는 것을 아프게 각인시킨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간절함이 지향하는 것은, 지향해야 하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그 어느 곳에서든,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경제를 부흥시키는 데 전쟁만큼 획기적인 방법이 없다는 식의 끔찍한 생각이 위정자들의 골수에서 박혀 있다면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너무도 순진해서 그 어떤 나라에서도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영세중립국 비슷하던 북유럽 국가들이 우크라니아 전쟁 이후 나토 가입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에 절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낼모레 뒤쯤으로 다가온 새로운 대통령의 취임 이후를 생각하면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부차 학살’에 대한 DW의 팩트체크 : https://www.dw.com/.../fact-check-what-really.../av-61388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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